김제영의 ‘페르시아 문화유적 답사기’ (7) |
| ||||||||||||||||||
(서프라이즈 / 김제영 / 2010-10-24)
호마(Homa)의 이란 어의(語義)는 ‘유일한’이라는 뜻이란다. 이슬람의 성스러운 예배용 무릎깔개와 메카의 이마 돌을 선물로 준, 내게는 유일하게 정겨웠던 Homa Hotel에서 조식 후 코란게이트로 출발했다. 코란게이트는 고속도로에 설치된 육교 규모의 거대한 차량의 통과문이었고, 그 육교형태의 구조물이 이란에서 가장 큰 코란의 보관소였단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코란게이트를 통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알라신의 축복이 따르고 특히 여행 객에게는 무사히 관광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는 안전이 주어진단다. 코란게이트에서 곧장 뻗은 도로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으로 이어졌단다.
이란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하페즈(Hafez, 1390년 사망)와 사디(Sa'di, 13세기)의 무덤은 바로 연결된 지번 내의 공원으로 조성되어 ‘파크 앤드 빌딩 오브 더 머슬렘 오브 하페즈(Park and Building of the Mausoleum of Hafez)’ ‘사디야 파크 앤드 더 머슬렘 오브 사디(Sadiyeh Park and the Mausoleum of Sa'di)’로 참배객이 끊이지 않았다. 사디의 머슬렘을 안내한 현지 가이드가 시인의 정서 못지 않은 감정과 모션으로 사디의 시를 낭랑하게 읊어준다. 페르세폴리스의 부조(다리우스에게 선물을 바치는 속국의 사신들)를 설명할 때의 그 긍지가 날개를 달고 퍼덕이듯 눈에 보인다. 석조의 머슬렘은 무덤 같지 않게 내부(창)와 외벽(일부)이 아름다운 문양으로 채색되어 있다.
사디의 관에서 그랬듯 하페즈의 관에서도 대부분의 참배객들이 서로 얼굴을 디밀며 뺨, 이마, 입술을 대는가 하면 아기를 쓰다듬듯 어루만지기도 한다. 시인에 대한 이란 민족의 흠모의 정은 깊고 순실하였다. 공원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옥외 다방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창틀 같은 공간의 한쪽 벽에 기대어 꿈을 꾸듯 모두가 무엇인가를 빨고 있다. 생전 처음 대하는 장면이다. 마약을 피우며 황홀경에 빠져들 있는 것일까. 어쩐지 퇴폐적인 감이다. “이미 돈도 지불했는데 아깝지 않으세요. 이란여행의 경험인데요.” 하는 수 없이 담배통을 받아 호스에 달린 나무빨대를 입에 문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여유가 있고 환상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 같았다.
한 모금 빤다. 이게 어찌 된 셈인가. 담배를 피우는데도 기술이 필요한 것일까. 여느 사람들은 눈을 스르르 감고 대수롭지 않게 뻐끔뻐끔 연기를 토해내는데 담배통이 막혔는지 절벽이다. 전혀 빨리지가 않는다. 젖먹던 힘을 다해 빨아들이려는데 찰칵 누군가가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첫날부터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며 우리 일행의 움직임과 가이드가 설명하는 배경을 성실하게 비디오에 담아온 피부과 전문의 박세훈 원장이었다. 지금도 내게는 세계의 7대 불가사의 못지않게 풀리지 않는 게, 나는 한 모금도 빨 수 없는 중노동만큼이나 힘이 드는 그 담배를 어떻게 그렇게 편하고 대수롭지 않게 빨 수 있을까이다.
쉬라즈에 도착 하고서의 가이드(이정자 양)의 첫 주문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옷을 입으라는 것이었다. 이슬람의 규율에 위배되는 복장일 경우 모스크(Mosque) 입장이 거부된다는 것이다. 하긴 테헤란은 신도시이기에 융통성이 있겠지만 A.D.693년부터 형성된 이슬람의 도시(Mohammad Ebn-E Yusef에 의해 세워짐) 쉬라즈의 보수성은 제제가 까다로울 것이다. 출발하기에 앞서 한국에서 짐을 챙기면서 높은 기온과 기온의 냉각에 대비해 잠옷을 두벌 넣었다. 면으로 발끝까지 내려오는 흰 것은 호텔 실내온도가 맞지 않아 냉기를 느낄 때의 것이고, 초록색 인조견은 더울 때 입으려던 것이다. 지병인 천식기로 하여 기온에 대한 체감이 민감한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이정자 양의 주문에 응할 만한 옷이 없다(새로 사자니 아깝고). 하는 수 없이 인조견 잠옷을 꺼내 입었다. 모스크 입장에 거절당하지 않을 만큼 무릎을 덮었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사원의 도시를 잠옷 바람으로 나다닌 내 불경과 담배를 피우려던 필사적인 내 얼굴은 이란 여행의 내 캐리커처(Caricature)이기도 했고 극적인 순간을 포착한 박세훈 피부과 원장의 사진작가로서의 쎈스가 돋보여 그의 작품으로 내 만화적 얼굴을 내놓기로 했다. 이란의 다방이란 남녀가 친구끼리 마주 앉아 물담배를 피우는 곳이고 우리의 소주잔보다 약간 큰 찻잔은 유리제였고 이란산 엽차는 향기로웠고 차는 원하는 만큼 마실 수 있으니 서비스는 최고였고 차 값이 굉장히 싸다고 들었다. 물담배, 차 값을 누가 지불했는지, 박세훈 원장이 지불하지 않았을까…….
하페즈 지하 휴식공간도 기묘한 구조였다. 중앙의 8각(?) 우물 둘레는 의자라기보다는 침상이라는 편이 더 가까운 넓은 물체가 놓여 있고,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젊은이 쌍쌍이 눈에 띄었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니 고인 물이 아니고 한 방향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이곳을 지나 자일레강으로 합류를 한단다. 아기 팔뚝만 한 송어가 흐르는 물을 거슬러(?) 꼬리 치고 있었다. 하페즈 생존 시에는 본래 이곳에 그의 집이 있었고, 후에 회교 사원이었으나 현재는 우물이 있는 Cafe로 쉬라즈의 명물이 되어 있다고 한다. 정식 답사 일정에는 없었으나 버스로 시내를 지나다가 성채를 발견했다. Fortified Walls of Arg-e Karim Khan이다. 유럽의 성채나 한국의 성곽, 인도의 레드포트, 중남미의 스페인식 성채와는 상이한 독특함이 시선을 끌었다. 버스가 지나가는 창 밖으로 잠깐 스친 그 성채의 웅자는 미적 감흥이 도도했다. 원형으로 거대하고 우람하게 쌓아올린 원주의 구조물은 섬세한 솜씨이기도 했다. 전 도시를 바라볼 수 있고 도시에서는 사방에서 같은 형태의 원탑을 바라볼 수 있음이 Arg-e Karin Khan의 멋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은 이슬람 성직자 양성소 마드레세한이다. 도시 서민들의 생활공간에 함께 섞여 있었음이 좋은 인상이었는데 의외로 성직자들의 성미는 괴팍해 보였다. 새파란 신입생이 아니고, 나이로 미루어 중견 지도자쯤으로 보이는 사나이들이 학교에서 나오고 있기에 사진을 함께 찍어도 되겠느냐고 하니 선선히 응해주었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다 말고 우리만 찍을 게 아니라 기왕이면 우리 다 함께 찍자고 앞에 있는 작가들을 불렀다. 그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오고 있는데, 싫다 안 찍는다 하며 팩 돌아서는 게 아닌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멍해 있다가 후다닥 놀라 그들을 불렀다. 그나마 놓쳐서는 아니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기행문을 쓰려면 메모만으로는 안된다. 사진이 기억을 되살려주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과 나, 이렇게 찍기는 찍었으나 이란 국민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대목 중의 한 파편이다.
우리는 시장하면 눈이 맵고 금시 어디선가 누전이 되어 불바다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간신히 누르고 돌아보게 되는 동대문 남대문시장을 떠올린다. 미국의 야드 세일도 떠올리고, 파리의 벼룩시장, 인도, 동남아의 시장도 떠올린다. 이란의 전통시장도 그러려니 했다. 시장에 들어선 나는 떡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이게 어찌 시장이란 말인가. 박물관이었다. 물론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이 칸칸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도저히 시장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세계의 유수한 백화점이 ‘현대’를 내세워 첨단적 기기를 아무리 호화찬란하게 진열해 놓고 얼굴이 비치게 바닥을 닦아놓았다 해도 이란의 Bazzar에 옮겨다 놓으면 이란의 Bazzar는 동구밖에 그늘을 드리운 해묵은 느티나무이고 번들번들 번쩍이는 미인들의 미소가 맞아주는 백화점은 시멘트로 포장된 경운기 길에 나부끼는 지푸라기로 비교될 것 같았다. 아치형 게이트, 이슬람 사원의 웅장한 천장, 정교하게 치장된 벽의 무늬. “좀 깎아줄 수 없어요?” 한사코 안된다더니 이란 고유무늬의 앙증스러운 상자곽을 내놓으며 이것을 줄 테니 깎지 말란다. $5이란다. “그럼 $25에 주겠다는 셈이네요. 선물은 관두고 이 커버를 벗겨 놓을게 $25에 주세요.” 선선히 그러란다. 책을 싼 포장 뚜껑이 너무 고급스러워 인쇄비가 많이 먹혔거나 외국에서 인쇄한 게 아닌가 해서 헛일 삼아 꺼냈는데 화살이 과녁을 맞혔다. 선물 대신 $30인 책을 $25에 샀다.
| ||||||||||||||||||
|
'유적탐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제영의 이란 페르시아 문화답사 (9) (0) | 2010.11.14 |
---|---|
김제영의 ‘페르시아 문화유적 답사기’ (8) (0) | 2010.11.14 |
김제영의 ‘페르시아 문화유적 답사기’ (6) (0) | 2010.11.14 |
김제영의 ‘페르시아 문화유적 답사기’ (5) (0) | 2010.11.14 |
김제영의 ‘페르시아 문화유적 답사기’ (4) (0) | 2010.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