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과 안상수는 보수로 위장한 X맨?
(서프라이즈 / 흑수돌 / 2010-12-03)
요즘 나는 정말로 희한한 일을 목격하고 있다. 진보세력이 가장 겁내는 게 '북풍'인데 지금까지 수많은 정권을 겪으면서 북한이 1년에 2번이나 도발을 해준 경우가 없었는데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북풍'이 휘몰아쳤지만 거꾸로 진보세력은 기세등등하고 보수세력은 표 떨어지는 소리에 신음하고 있다. 참으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2022년 월드컵 유치전에도 정몽준의 단골메뉴인 '북풍'(한반도 평화에 스포츠가 기여할 수 있다)을 써먹었다가 10년이 지났는데도 지난 2002년 월드컵 유치 때와 똑같은 레퍼토리냐며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나는 가장 큰 이유로 (1) MB정권의 아마추어리즘과 (2) 정권 이너서클 내 자정기능 마비... 요렇게 두가지를 들고 싶다. 과거 조중동과 보수세력은 DJ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향해 '아마추어 정부'라며 맹렬히 비난한 바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MB정권의 시계가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국민들은 도리어 그동안 '아마추어 정부'라고 생각해왔던 김대중과 노무현이야말로 진짜 프로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김대중은 천안함이나 연평도보다 몇십배는 더 큰 위기였던 IMF 외환위기와 북핵위기를 극복했지만 MB는 지금 연평도로 허둥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군의 늑장대응과 작전혼선이 '전시작전통제권' 때문이며 그걸 바로잡으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었다는 사실까지도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다. 보너스로 그걸 맹렬히 반대한 사람이 바로 MB정권 핵심인물들이라는 사실까지도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철학과 사명감이다.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은 그냥 야구가 좋아서 한다. 그런데 프로야구 선수들은 매일매일 목숨을 걸고 야구를 한다. 아마추어 선수는 오늘 삼진 당해도 내일 다시 그라운드에 설 수 있지만 프로 선수는 지금 이 타석에서의 나의 결과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고 냉정한 평가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차이가 하늘과 땅 만큼의 결과 차이를 내게 된다. 김대중 정부가 표방했던 캐치프레이즈는 '국민의 정부'였다. 그래서 그는 국민과의 소통에 목숨을 걸었다. DJ정부 기간 동안에 시민사회단체들은 르네상스 시대를 구가했으며, 언론의 자유도 최고 성숙단계에 도달했다. 오마이뉴스-프레시안-미디어오늘-서프라이즈 모두 김대중 정부의 미디어/IT 정책이 아니었다면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표방했던 캐치프레이즈는 '참여정부'였다. 이 기간 동안 낡은 기득권 프레임들이 상당히 많이 깨졌다. 조중동과 중앙공무원간 유착관계도 끊어졌고, 재벌과 언론 간 유착관계도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참여정부의 근간이 되었던 것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 자신의 백성 사랑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그토록 단호할 수 있었던 것도, 독도 문제에 발포명령까지 내리며 단호할 수 있었던 것도,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해 여론의 비판이 거셈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관철시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국민에 대한 사랑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참여정부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사랑이 중심이 되어 그러한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과연 무엇일까? 대운하 정부? 녹색성장 정부? 네오콘 정부? 흥미로운 것은 김영삼 이후 노무현까지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 등 정권의 철학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캐치프레이즈가 있었는데 유독 이명박 정부에게는 이러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본래 프로 정치라는 게 지도자가 명확한 철학과 비젼을 제시하고 그 철학과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이 모여서 정책을 만들고 집권을 준비하는 것인데 MB 집권세력에게는 그와같은 절차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유우익이나 정종환 같은 사람은 대운하 하려고 정권에 참가했고, 이동복이나 김두우 같은 사람은 조중동의 이익을 대변하려고 들어갔고, 뉴라이트는 새로운 기득권을 등에업어 한자리 차지하려고 들어갔고... 그러다보니 이들 중 누구도 이명박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떠한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고 가고자 하는지 도통 관심이 없었다. 조중동도 정권 빼앗아오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다보니 MB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검증 없이 사실상 여론조작 수순을 밟으며 정권탈환에 올인했다. 그 결과 MB 정부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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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고 말하고 있는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YTN 돌발영상 화면 갈무리 |
그런데 요즘들어 MB정부 출범에 기여한 세력들이 일제히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명박과 안상수가 보수세력의 치부와 아킬레스건을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보여주면서 사실상 보수세력 완전 몰락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명박과 안상수 입장에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군대 안 갔다 온 대통령과 여당대표가 어디 그들 뿐이었나? 김대중도 안 갔다 왔고 김영삼도 안 갔다 왔다. 김대중 때 대표였던 한화갑도 안 갔다 왔고 노무현 때 대표였던 김근태도 안 갔다 왔잖아. 근데 왜들 나만 같고 그래... 이럴 법도 하다. 그렇지만 그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개혁과 복지를 내세워 정권을 잡았는데 일시적으로 안보가 불안하면 국민들이 기다려줄 수 있다. 그런데 안보와 경제를 내세워 정권을 잡았는데 안보도 불안하고 경제도 나쁘면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혹시 잊었냐? 고건-박근혜-이명박이 20% 전후에서 지지율 왔다갔다 할 때에 갑자기 갭럽 여론조사에서 MB 지지율이 32% 나왔는데 그게 북한 핵실험 직후였지? 안보가 불안해지니까 MB 리더십이 부각되었다면서... 장사꾼들이 팔아먹을 때 마음과 팔고 난 이후에 마음이 다르면 안 되잖아...
본래 보수가 표방하는 이미지는 "능력 있고 안정감 있다" 바로 요거다. 이명박이 BBK와 도곡동 땅 문제를 넘길 수 있었던 것도 애시당초 국민들이 보수세력에게 도덕성과 개혁성을 기대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거짓말하고 나쁜 짓하더라도 국민들 안심하고 넉넉하게 살 수 있도록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요런 마음으로 찍었단 말이다. 그런데도 천안함은 침몰하고, 연평도에는 대포 날라오고, 국가부채와 가계부채는 급속히 늘어나고, 한미 FTA 지지부진으로 수출에도 먹구름이 끼어들고, 2년전 겪었던 미국소 촛불이 다시 재연될 조짐이 보이고, 4대강 주먹구구 개발로 총체적 경제위기가 올 것 같고... 이러니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세력이 결코 도덕적이지 않고 개혁적이지도 않지만 그래도 일은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는 상황에서는 '북풍'이 이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 그 믿음이 깨진 상황에서는 오히려 '북풍'이 그들의 목을 죄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게 현재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오히려 이명박과 안상수에게 고맙다고 엎드려 절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어떻게 저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통령으로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저렇게 경박하고 줏대없는 대표로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 정말 그 비법을 묻고 싶기 때문이다. 이들만큼 확실한 반면교사도 없다. 과거에는 아무리 허접한 여당이라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중량감있는 인물들을 내세웠다. 정동영이 탄핵정국을 틈타 당의장에 되었지만 노인폄하 발언으로 곧바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처럼 권력과 자리에 집착하는 사람이 왜 그랬겠냐? 물러나지 않고는 정권 이너서클 내부의 반발과 분노를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상수는 그보다 몇배 더 심각한 파장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본인 스스로 물러날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그에게 물러나라고 압력을 넣는 사람들도 없다. 왜냐고? 모두들 이명박 눈치만 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한나라당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정당이라면 절대로 안상수와 홍준표 같은 사람이 당권을 놓고 다툴 수 없다. 정당에도 품격이라는 것이 있고 수준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떻게 과거에 '저격수'를 하며 품위없는 발언의 초절정을 보여줬던 사람을 지도부에 앉히며, 어떻게 징집을 피하기 위해 도망다니며 군대를 면제받은 사람을 당대표로 선출할 수 있냐? 본래 전세계적으로 보수주의가 내세우는 것은 바로 'Noblesse Oblige'다. 이것의 핵심은 내부적으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서 스스로가 먼저 변하고 실천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보수주의 정권이야말로 앞서 말한 정권 이너서클의 견제와 자정 작용이 가장 중요한 무기이자 노하우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작동되지 않으니 허접한 해프닝과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심이 지금처럼 나빠지면 이제는 '박근혜 대세론'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박근혜야말로 '원조 보수'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고 있는데 보수가 지금처럼 국민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다면 아무리 눈물 흘리고 손이 부르트도록 악수를 하더라도 국민들로부터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워진다. 더욱이 요즘 박근혜는 친박연대 복당과 이명박과의 식사회동 이후 꿀먹은 벙어리 아닌가? 요즘 조중동 사설 보면 MB와 그 측근들에게 거의 저주를 퍼붓다시피 하고 있다. 종편허가가 사실상 누더기가 되어 방송으로 재미 보기도 글렀고, MB가 정권 잡으면 한겨레-경향-오마이-서프 다 문닫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힘을 얻고있고, KBS-MBC-YTN을 장악했다고 만세삼창 했는데 이들도 요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고... 류근일 말대로 정말 도끼로 손을 찍고 싶은 심정일게 분명하다. 아마도 보수 지식인들 술자리에서 이런 말이 단골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혹시 이명박과 안상수는 보수세력으로 위장한 X맨 아닐까?"
(cL) 흑수돌
P.S. '소통불능'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때문에 국민들의 보수에 대한 이미지가 급락하고 있는데 거기에 그보다 더 막무가내인 홍진표를 위원으로 추천했다고 하죠? 거기에 정말 타이밍 좋게 나온 MB 퇴임 후 호화저택 논란...ㅎㅎㅎ 정말 MB는 오늘도 X맨 역할을 너무도 충실히 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