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신 틀렸어!”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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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진실의 힘’ / 김창호 / 2011-02-15) 노 대통령은 필자에게 집필작업을 도와줄 것을 희망했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홍보처가 만든 「대한민국 교육 40년」, 「대한민국 부동산 40년」, 「참여정부 경제 5년」 등 3부작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즉각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국정홍보처에서 해직된 기자출신 공무원과 관련 전공 박사들을 모아 서울에 사무실을 열었다. 그리고 매주 대통령과 봉하에서 1박2일의 토론을 가졌다. 이 토론에서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을 정리해 놓은 것이 바로 「진보의 미래」이다. 주제가 왜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진보의 미래’로 바뀌었을까. 내부토론 과정에서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국가’라는 주제로 담아낼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재임 시절 비정규직, 청년실업, 양극화 등의 문제를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고 복지기반을 혁신적으로 확충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노 대통령은 시장중심 성장정책으로 인한 양극화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써 복지 등의 문제를 국가의 역할로 생각했다. 그러나 토론과정에서 이런 국가중심 접근방식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국가주의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또 시장에 대한 국가개입, 국가주도 복지만으로 오늘날의 진보를 한정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국가의 역할 강화를 진보와 등치(等値)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담아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론을 약 50페이지의 보고서로 만들어 보고했다. 그래서 「진보의 미래」로 주제가 바뀌었다. 어차피 우리가 말하려는 것이 ‘진보’이니 바로 ‘진보’를 중심에 놓자는 것이었다. 여전히 냉전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진보’ 의제는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진보를 더욱 적극적으로 의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몇십 년간 우리를 지배해온 성장중심 사회에서 복지중심 사회로 전환하는 것이 진보의 핵심이다”라고 정리했다. 현재 정치권에서 복지가 주요의제로 부각된 것은 바로 노 대통령의 「진보의 미래」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동안 국가는 우리 사회 발전전략의 중심에 있었다. 이른바 ‘박정희 모델’이 대표적인데, 이는 국가가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해 성장에 투입하는 개발독재였다. 또 이러한 개발독재를 통해 파이를 키운다는 명목으로 폭력적으로 민주주의를 희생시키는 통치방식이 군사독재였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개발독재에 의한 성장은 한계에 이른다. 이는 경제성장을 정당성의 근간으로 삼았던 개발독재의 정치적 토대를 위협함으로써 내부 갈등을 촉발했으며 결국 박정희는 측근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이어 등장한 신군부는 군사독재를 기반으로 강력한 시장주의정책을 추진했다. 그동안 억제된 시장의 잠재력을 극대화한다는 방향이었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시장을 추동하는 것은 국가였다. 신군부라는 과도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시장’과 ‘작은 정부(자유주의국가)’가 주요의제로 떠올랐다. 탈권위주의라는 시대정신의 탈을 쓰고 당시 한국사회의 위기가 ‘국가실패’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의되면서 ‘시장’이 그 대안으로 떠올랐다. 친재벌 연구기관인 자유기업원부터 언론 그리고 지식인들이 ‘작은 정부’와 ‘시장만능주의’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재벌을 우호적으로 다룬 언론 사설과 칼럼의 수는 1995년 17%에서 2005년 39%로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중심 발전전략은 곧 위기에 봉착했다.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부도 사태는 바로 시장중심 발전전략의 처절한 실패를 상징한다. 시장이 국가주의 발전전략의 대안이라는 주장은 거짓임이 명백해졌다.
이처럼 국가주의 발전전략은 한계에 봉착했고 그 대안으로 부상했던 시장중심 발전전략은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은 권위주의국가와 시장중심주의의 얼치기 조합이라는 대안을 들고 나왔다. 예컨대 ‘MB물가’를 정해 집중관리하면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발상은 전형적인 개발독재식 사고이다. 한편, 각종 규제완화, 수도권 규제완화, 법인세 인하 등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접근방식이다. 특히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의 축소 등 ‘작은 국가’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시장의 유지를 위해 내재적으로 ‘강한 국가’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이명박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용산참사 등 여러 사건에서 기업의 이익과 약자의 생존권이 갈등할 때, 국가는 일방적으로 기업의 편에서 약자의 생명과 이익을 짓밟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편파적이고 강한 국가는 일방적으로 서민에게 고통과 희생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 결과는 혹독하다. 지금 서민들은 물가상승과 전세난으로 최악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자감세로 인한 국민의 세금부담도 이명박 정권 3년 동안 크게 늘어났다. (이명박의 부자감세로 ‘국민부담 간접세’ 폭증) 이뿐 아니다. 2009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국채증가율, 세부담증가율, 저임금노동자비율, 근로시간, 노동유연성, 비정규직비율, 산재사망자, 사교육비 비중, 이혼율, 자살률 등에서 1위이다. 반면 출산율은 꼴찌이고 소득격차는 2위이다. (김태형, 「불안증폭사회」, 위즈덤하우스, p.16 참조) 오직 ‘경제’ 이슈로만 대통령에 당선됐던 이명박의 경제성적표는 너무 초라하고 지난 3년 동안 서민의 삶은 너무 힘들고 처절하다. 시장과 국가의 얼치기 조합으로 구성된 이명박식 발전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는 이명박 정권을 통해 실험했던 한국 보수세력들의 발전전략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한국 보수세력의 실패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발전전략으로 국가와 시장을 오락가락했던 보수세력은 이명박 정권에 와서 역사상 가장 조잡한 국가/시장 조합양식을 선보였지만 그 결과는 서민들의 고통뿐이었다. 김영삼이 IMF 외환위기를 초래한 것처럼 이명박 역시 어설픈 비전과 경제정책으로 민생고를 심화시킨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런 이명박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이명박, 당신 틀렸어!”
김창호 / 전 국정홍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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