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미선

야산에 버려진 효순이, 미선이를 찾아서

순수한 남자 2007. 6. 13. 10:02

야산에 버려진 효순이, 미선이를 찾아서

광화문 한 켠에 서있다 3년 전 철거된 '자주평화 촛불기념비'. 효순이와 미선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제보를 받고 찾아간 곳은 서울임에도 서울이 아닌, 인적이라곤 소름 끼칠 만큼 없는 자하문 터널 위쪽 청운공원 앞 야산이었다.

23일 밤 11시. 청운공원 앞에 놓여있는 컨테이너 박스 뒤 야산을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20미터 쯤 길을 트며 나아가자 화강암 비석의 머릿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효순, 미선의 영혼으로 피어난 100만의 자주, 평화 촛불을 되새기며’라고 세겨진 촛불기념비는 야산에 버려진 여느 쓰레기처럼, 뿌리 채 뽑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고목처럼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종로구청에서 ‘보관’해 놓겠다고 한지 3년하고도 4개월 보름여 만이다.

△야산에 버려진 국민들의 자주 평화의 염원. 종로구청 관계자는 "창고에 넣기 곤란해서 안 넣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컨테이너 박스는 종로구청이 사용하는 물품창고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다음날인 24일 오전 종로구청을 찾아갔다. 왜 기념비가 야산에 버려져 있는지 알고 싶어서다. 이날은 부처님 오신날이라 담당 건설관리과 공무원들은 출근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종합상황실에서 만난 구청 당직자의 말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종로구청은 지난 2004년 1월 촛불기념비를 철거한 뒤 청운동 구청창고에 기념비를 보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주평화 촛불기념비’가 청운공원 앞 야산에 버려져 있던데, 어떻게 된거냐는 질문에 구청 당직자는 “창고에 넣기 곤란해서 안 넣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왜 청운공원 쪽으로 간 것 같냐는 질문에는 “구청 내 창고 용적에 한계가 있어서 그쪽으로 보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건설관리과 담당과 이야기해 보라, 나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할 따름이었다.

기념비를 보관하고 있겠다던 종로구청이 구청 내 창고가 가득 차서 창고 밖에서 보관하고 있는 건지, 내동댕이친 건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창고 ‘밖’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24일 오후 다시 청운동 창고를 찾아갔다. 청운공원 앞 컨테이너 박스는 종로구가 관리하는 물품보관창고였다. 왜 촛불기념비는 멀쩡하게 잠겨있는 컨테이너 박스에 안에 들어가 있지 못하고 뒤편 야산에 버려져 있는 걸까? 창고에 넣기 곤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창고에 넣기 곤란하다면 그냥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 걸까?

이 사건을 제보해 달라고 부탁한 한 할아버지는 방치된 기념비를 제대로 세워달라고 동사무소를 찾아가 부탁도 했단다.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을 애도하며 촛불 집회도 나갔었다는 그 할아버지는 국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기념비가 그렇게 야산에 버려진 것에 마음이 항상 불편했단다. 그러나 동사무소는 묵묵부답이었단다.

버려진 촛불기념비에는 하단부 모서리 부분의 작은 파손 외에 큰 외상은 없었다. 그러나 마음이 아파서 제보를 부탁했다는 한 할아버지의 마음에, 이 기념비를 세우겠다고 모인 10만 국민의 마음에 남을 외상은 어찌할까?



/ 김도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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