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잔재 옹호하는 10가지 '궤변'들
- '친일파 청산'이 야당 음해하는 정치 음모? -
"나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김활란, 모윤숙, 송금선, 황신덕, 심형구는 물론 김성수, 방응모를 존경한다. 그들은 민족을 반역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겨레를 살리기 위해 일제하에 엄청난 고난을 감수하였다. (중략) 망명하여 중국 땅에서 혹은 미국 땅에서 일제하 36년을 참고 견디어야 했던 애국지사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전혀 없었다"(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월간조선 4월호)
"친일파로 낙인찍히면 해당자 본인뿐 아니라 그 가문에도 치욕을 준다. 어떤 이념 차나 경쟁심리 따위의 이해관계가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작용하는 것을 엄히 경계해야 한다."(남시욱 성균관대 겸임교수, 조선일보 3월6일 시론)
"오늘날 누구누구를 친일파로 가려내 기소하고 처벌할 법적 도덕적 근거가 없으며 이는 역사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소설가 복거일, 계간 철학과 현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57년이 지났지만, 뒤늦게 시작된 '친일파 청산' 작업은 '친일'이라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를 느끼는 일부 보수 논객들의 반론들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지난 2월28일 여야를 망라한 소장파 국회의원들의 친일파 명단 발표에 전 언론사주들이 포함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들의 주장에 적잖은 지면을 할애해 반론 확산에 주력했다.
13일 오후2시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학술단체협의회(이하 학단협) 정책토론회(한국 근현대사속의 친일의 의미와 친일파 청산운동의 필요성)에서는 친일파를 옹호하고 청산 작업을 반대하는 궤변들이 유형별로 정리, 발표돼 주목을 끌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은 "과거를 잊자는 '망각론', 모두가 친일을 했다는 '공범론', 한때의 친일로 한 사람을 매도하지 말자는 '공과론', 친일파를 오히려 수난을 감내한 사람으로 떠받드는 '순교자론' 등 친일파 청산을 반대하는 10대 궤변이 있다"고 발표했다.
박 연구원은 '10대 궤변'중 친일파 청산 주장을 하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색깔론'을 "가장 강력한 반론으로, 과거 친일파의 논리를 가장 충실히 이어받은 논리"라고 비판했고,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야당 정치인을 겨냥한 '정치적 음해론'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의해 친일문제가 이용되어서는 안 되지만, 정치음해론을 빌미로 친일청산 그 자체의 필요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박 연구원이 이날 발표한 10대 궤변의 논리와 그 반론을 정리한 것이다.
1. 색깔론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집단은 빨갱이라는 주장. "해방 직후에도 친일파 청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산당 사람들이거나 이들과 가까웠다. 친일파 비난하는 것은 북한의 단골 주장이다. 지금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X들은 죄다 빨갱이다"는 주장은 민족문제연구소(www.minjok.or.kr)나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www.historyfund.com) 홈페이지에 가장 자주 올라오는 친일 청산 반론 중의 하나이다.
(반론) 대체로 이들의 조상에는 전직 친일 경찰 군인들이 많다. 그리고 이들은 6 25 때 자신들의 부친이 '북괴의 남침'을 막아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애국자(founder)인데, 빨갱이들이 이를 미워해 친일청산 명분을 들고 나온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한민국을 만든 주인공이 결코 아니다. 독립국가 건설을 막기 위해 일제의 독립운동 탄압의 최일선에서 활동한 일제의 주구들이라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 이들의 반공은 생존 본능이었으며, 이들이야말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부패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이 주장은 가장 충실하게 과거 친일파의 논리를 순혈주의로 이어받고 있다 하겠다.
2. 공과론(功過論)
비록 한때 친일을 했더라도 민족에게 끼친 공로가 많으니, 한 때의 친일로 한 인간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 식민지 시기 교육, 언론, 학술, 문화 다방면에서 선각자로서의 활동이나, 한때의 독립운동 그리고 해방 후 반공활동이나 기득권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활동들을 공으로 든다.
(반론) 친일파들이 부분적으로 공이 있더라도 민족 전체에 대한 범죄행위가 심각할진대 정상참작이 아닌 면죄부로서 공을 격상시키는 것은 주와 종이 바뀐 것이다. 나아가 이들의 공과론에는 '공'은 내세울지언정 '과'는 결코 스스로 언급한 적이 없다.
모 신문사 사주처럼 친일 행적은 감춘 채 민족운동가로 묘사하는 것은 공과론을 넘어서는 기만행위다. 김동길이 말하는 16인의 각 분야의 업적이란 것도 일제시기 그들이 친일의 대가로 보존해 온, 그리고 해방 후 반민특위가 와해되면서 고스란히 유지된 그들의 사회적 기득권을 말한다. 제대로 친일세력을 청산했으면 이런 기득권이 그들에게 남았겠는가? 지금의 조선일보, 동아일보처럼 언론의 위세를 빌어 이렇게 설칠 수 있었겠는가?
3. 공범론(共犯論)
그 때 친일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주장. 공범론자들이 곧잘 드는 예가 창씨개명. 대부분의 사람이 창씨개명을 했으니 이들도 일제에 '협력'했다, 다 친일했는데 누가 누구를 단죄할 수 있냐는 주장이다. 당신도 그 때 태어났으면 친일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는 협박도 여기에 포함된다.
(반론) 친일파 청산 세력들은 창씨개명이나 말단 생계유지형의 소극적 친일을 한 사람을 친일파라 한 적이 없다. 친일파는 자의든 타의든 지속적으로 일제에 협력하고 민중에 대해 해악을 끼친 적극적인 인자들을 뜻한다.
우리 또한 일제시기 태어났으면 친일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100% 보장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은 누구나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 따라서 살인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기막힌 논법으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
4. 망각론
과거는 흘러갔다는 논리. 50년이 지난 이 시점 당사자들도 다 죽었는데 친일파 청산은 궤변이라는 주장이다. 해방 직후 반민특위의 해체로 친일파 청산 재론은 일사부재리에 해당한다는 '법리적 주장'도 포함된다.
(반론) 친일파들에 대한 법적 제재는 불가능해도 이들의 행위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속죄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더구나 해방 후 이들이 기득권을 포기, 자숙하지 않고 온갖 기념사업까지 전개하면서 또 한번 역사 왜곡을 저지르는 한 친일문제는 잊혀진 과거사가 될 수 없다.
5. 범부피해론(또는 호구책론)
권력의 강제에 의해 친일을 했기 때문에 연약한 개인(범부)이 이를 감당하기엔 무리였다는 주장. 서정주는 해를 따라 살아가는 무지랭이인 '종천순일파'라고 자처하기도 했다.
(반론) 당시 친일은 강요도 있었지만 본인의 의지도 매우 중요했다. 또 백번을 양보해 범부로서 불가항력이었다 할지라도 그에 따른 타인(민중)의 피해에 대한 속죄는 상식이다. 가난하다고 도둑질하면 용서를 빌지 않아도 되는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일제시기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서 공인적 성격이 강했다. 그들이 해방 후 반성하고 범부로서의 삶으로 자숙했으면 이 주장은 성립된다. 그러나 해방 후 이들은 범부의 삶보다 '민족지도자'의 화려한 영광을 그대로 누리고자 했다. 다른 모든 행위는 민족지도자로서의 비범함에서 나오고 친일행위만은 범부의 것으로 자신을 분해시키는 몰염치성이 더 큰 문제라 하겠다.
6. 직분충실론(또는 희생론)
'박정희는 군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다녔다. (어느 시민)', '민족언론(민족교육)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했다. (김활란, 모 언론사주)'는 주장.
(반론) 이 같은 직업의 탈윤리화 속에는 기득권의 영속화와 역사의 면책 욕구가 숨어 있다. 사실 이들이야말로 친일의 핵심이다. 일제가 추구한 친일세력의 구조화는 바로 문필보국, 언론보국, 황도예술 등 '직업봉공'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민족 언론을 살리기 위해 친일을 했다는 논리 아닌 논리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7. 순교자론
당시 자신들의 친일 행위를 민족의 선각자로서 겪어야 했던 수난이라고 주장하는 '역사의 희생자(순교자)'라는 주장. 대표적인 논자가 3 1절 명단 발표 후 이른바 문제의 16인을 월간조선을 통해 적극 옹호한 김동길 교수.
(반론) 김 교수는 16인의 친일을 일종의 순교 행위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해외 망명 독립운동가에 대한 멸시와 국내 친일파에 대한 순교자적 숭배라는 뒤바뀐 역사관을 확인한다. 따라서 친일파에 배한 비판은 민족반역이라는 희한한 논리가 나온다.
8. 연좌제의 부활
이제 와서 친일파 명단을 거론하는 것은, 죄 없는 후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반론) 연좌제를 잘못 해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친일파 청산의 내용을 왜곡하고 있다. 친일파 청산의 의도는 친일파의 후손을 벌주고 보복하려는 데 있지 않다. 이 같은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행여 조상의 친일 문제 때문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을까 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9. 국론분열론
친일청산은 양육강식의 세계화 시대에 민족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소모하는 불필요한 담론이라는 주장.
(반론)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친일만이 아니라 모든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이나 논쟁은 민족 통합의 적이 되는 셈.
10. 정치적 음해론
정치권에서 종종 나오는 야당 정치인을 음해하기 위한 정치적 모략과 결합된 음해라는 주장.
(반론) 물론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의해 친일문제가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치음해론을 빌미로 친일청산 그 자체의 필요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고 검증된 민간단체에 친일문제를 위임함으로써 민족 성원 모두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적극적 대안일 것이다.
이밖에 "친일파 청산은 퇴행적 민족주의 담론이며, 국제화시대, 탈민족국가 시대에 걸맞지 않은 시대착오적 논리"라는 주장, 여성친일파에 대한 비판을 "여성운동에 대한 가부장적 민족주의의 탄압"이라고 논박하는 견해들도 친일파 옹호의 궤변들로 거론됐다.(손병관 기자 redguard@ohmynews.com, 2002/08/14 오전 09:52, ⓒ 2002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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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후2시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학술단체협의회 정책토론회 |
[김삼웅 교수] "친일파는 모호한 개념" - '친일파'보다 '반민족행위자'로 불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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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단협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김삼웅(성균관대 겸임교수, 전 대한매일 주필)씨는 "나 자신도 친일파라는 용어를 많이 썼지만, 친일파라는 용어가 범위 규정을 하는 데 모호한 용어이므로 좀더 분명한 어휘 선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제시대 독립지사들은 일제에 빌붙어 우리 민중을 탄압한 무리들을 '친일민족반역자'라고 불렀고, 해방 직후에는 '부일협력자'로 불렀다. 이들은 제헌국회이후 '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됐다"고 전제하고, 최근 이들을 친일파로 뭉뚱그려 부르는 경향이 생겼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서 후손들이 '친일파'를 얘기할 때, 어디서 어디까지가 친일파냐는 식의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는가?"라고 물었다.
김 교수는 "종군위안부라는 표현도 자기가 원해서 군대를 따라다녔다는 뜻이기에 사용해서는 안되는 표현"이라며 "친일잔재 청산이라는 당위에 대한 얘기는 많은데, 오늘 토론회에서도 방법론에 있어서는 와 닿는 얘기들이 없었다. 친일잔재 청산을 위해 '친일파'를 대체할 다른 용어를 만드는 등 작은 실천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강창일 교수도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좋은 문제제기다. 얘기를 듣다보니 '친일파'는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용어 같다"고 말해 논의 필요성에 동의를 표시했다. / 손병관 기자 | |
친일청산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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