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총살형으로 마감된 나치협력 프랑스 언론인들

순수한 남자 2010. 1. 5. 15:35

총살형으로 마감된 나치협력 프랑스 언론인들
번호 106545  글쓴이 이기명 (seop1)  조회 391  누리 320 (320-0, 12:41:0)  등록일 2010-1-5 13:26
대문추천 23


총살형으로 마감된 나치협력 프랑스 언론인들
역사는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기록한다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01-05)


처형장이다.

“사격준비” “발사!”
총성이 울리고 처형대에 묶였던 사형수의 고개가 힘없이 툭 떨어진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나 현실에서도 있다.

이승만의 독재시절, 군부의 실권을 장악했던 특무부대장 김창룡은 허태영 대령에게 암살됐다. 독재자 이승만의 양자라고 까지 소문이 난 김창룡은 무한권력을 휘둘러 죄 없는 사람들의 눈물을 많이도 흘리게 했다.

당시 군에서 허태영을 비난하는 여론은 극히 적었다고 한다. 처형을 목격한 증인들은 허태영이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의연했고 그와 함께 처형된 부하들인 송용고, 신초식, 이유회도 당당했다고 전했다.

죽음은 끝이다. 역사가 이름을 기억한다 해도 끝이다. 그러나 인간은 후세에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역사를 두려워한다.

박정희 군사독재의 종식을 가져 온 김재규의 궁정동 안가 총성.

김재규도 형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역시 형장에서 당당했다고 한다. 독재를 종식시켰다는 당당한 신념 때문인가.

그러나 군부독재는 종식시켰지만 정권욕에 눈이 먼 정치지도자들에 의해 군부독재는 계속됐다. 그들이 힘을 모았다면 전두환 독재는 없었을 것이며 그토록 많은 죄 없는 국민들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똥통에 거꾸로 매달려서라도 살고 싶다”

사형수가 한 말이라고 한다. 그렇게 삶의 대한 인간의 집착은 강하다. 사형수에 관한 드라마를 쓰기 위해 서대문형무소의 사형장을 취재한 적이 있다.

사형수의 목을 감았던 밧줄(일명 넥타이)은 목기름에 쩔어서 노랗게 변했다. 얼마나 많은 목숨이 목에 밧줄이 감길 때 절망했을까. 안내자의 말을 들으면 사형수는 밧줄을 목에 걸 때 이미 절반은 사망한다고 했다.

불법을 정의로 알던 4.19발포 명령자와 정치깡패들의 처형을 직접 목격한 안내자는 그들의 비참한 최후를 전했다.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인 줄 알면서도 몸부림치는 사형수들. 정말 죄짓지 말고 살아야 된다고 몇 번씩 말했다.

우리 국민들은 5공 청문회를 벅찬 감동으로 지켜봤다. 이제 ‘사람 사는 세상’이 왔다고 생각했다.

광주학살 주범들의 양양한 모습과 권력에 빌붙어 배를 불리던 재벌들의 허망한 표정. 그러나 언론사 사주들의 뻔뻔한 배짱은 지금 생각해도 구역질이 난다.

언론이란 철판으로 방어벽을 쌓고 온갖 불법을 저지르며 배임과 세금포탈을 비롯한 불법을 저질렀던 언론사 사주들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언론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사회의 목탁이며 불의한 것들의 감시견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으로 산다는 기자들은 그들 사주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다짐을 했을까.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악덕 언론사주들을 상전으로 모신 언론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독재정권을 위해 무슨 짓을 했고 고귀한 목숨을 잃은 민주인사들을 어떻게 헐뜯었는지 생각이나 해 봤을까.

기사 한 줄을 쓰고 계엄사에 가서 검열을 받은 굴욕을 기억해 냈을까. 혹시나 기사가 맘에 안 든다고 끌려가 곤욕이나 치르지 않을까 겁먹던 기억은 생각했을까.

정말 그때는 살기 싫은 세상이었다고 후배 기자는 술회했다. 그런 중에도 곡필로 출세를 노리던 언론인도 있었고 출세도 했다. 부러운가.

이승만 독재정권 때도 잘못된 권력에 아부하던 언론이 있었다. 박정희 군사독재와 전두환 독재 치하에서도 간과 쓸개를 내 준 언론인이 있었다.

그들은 장관을 했고 국회의원을 했다. 기자를 하면서 구호처럼 외쳤던 사회정의 실현은 대폿집의 젓가락 장단이었나. 기자들의 손으로 독재자는 단군 이래 지도자로 둔갑했다.

떠오르는 태양이 됐다. 태양은 김일성뿐인 줄 알았더니 박정희도 전두환도 태양이었다. 세상에 웬 태양은 이렇게 많은가.

국회수첩을 펼쳐 언론인 출신을 헤어보다가 포기했다. 너무 많았다.

몇 명 죽어도 누가 죽었는지 모를 판이다. 널려 있는 게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다.
기특하고 대견한가. 희소가치가 없어 값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신이 값을 하락시킨다.

기자시험 볼 때 밝혔는가. 국회의원 하려고, 장관 하려고, 정계진출 하려고 기자시험 본다고 했는가.

아닐 것이다. 어쩌다 그렇게 됐노라고 상황논리로 변명할 것이다.
믿고 싶다. 그러나 하는 모습들을 보면 아니다.

1944년 11월 9일 새벽. 프랑스로 눈을 돌리자.

파리 남쪽 몽패르의 처형장에서 프랑스의 한 언론인이 총살당했다. 나치협력 언론의 앞잡섰던 54의 쉬아레즈는 총살형으로 반역언론인의 삶을 마감했다. ‘쉬아레즈’는 프랑스 일간지 ‘오늘’의 정치부장이었다.

쉬아레즈는 자신의 죄를 극구 변명했으나 재판부는 쉬아레즈가 나치를 찬양 찬미하는 103건의 반역증거를 인정하고 사형을 결정했다.

‘프랑스를 방어해 주는 나라는 독일뿐이다.’

‘영국과 드골이 폭격을 감행하면 나치군이 유대인과 공산주의자, 프랑스거주 미국인과 영국인을 인질로 잡아 대항하자’

이것은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했을 때 쉬아레스가 쓴 기사였고 그는 죗값을 치른 언론인이었다. 한국에도 느낌이 새로울 기자가 있다.

‘저기 철조망 넘어 총을 든 폭도가 서설 거리고 있다.’

5ㆍ18 광주민주화투쟁 당시 조선일보 김대중 기자가 쓴 기사다. 무엇이 다른가.

쉬아레즈의 변호인은 나치 점령기간 중의 반역행위는‘불가항력의 선택문제’라고 상황논리로 변명했다. 누군들 그때 별수 있었겠느냐는 논리다.

그렇다면, 반 나치 레지스탕스를 벌리며 목숨을 던진 그 많은 프랑스 언론인은 뭔가. 반독재 투쟁과 언론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던진 우리의 언론인은 뭔가.

해직 동아투위, 조선투위 기자들은 뭔가. 할 일 없어 심심풀이 투쟁을 했는가.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가. 머리가 좋아서 그런가. 양심이 없어서 그런가. 살기 위해서 그런가. 아니면 무뇌아이기 때문인가.

프랑스의 부역언론에 대한 단죄는 가혹하리만큼 엄정했고 부역언론인은 처형당하거나 중형을 선고받았다. 538개의 언론사가 기소되고 115개사는 유죄를 선고받고 재산을 몰수당했다.

우리의 어느 언론인과 언론사가 해당이 될까.

반민족 언론에 대한 프랑스의 처리는 일반인에 비해 더 엄격했다. 파리해방 직후 파리 숙청재판소가 최초로 응징한 나치협력자들은 모두 언론인과 작가들이었다.

이들에게 엄격히 중형이 선고되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지식인으로 가장 증오받는 부역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향력이 누구보다도 막강했기 때문이다.

파리의 한 재판에서 재판받은 작가와 언론인 32명 중 12인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7명이 처형되었다.

‘단순히 사설 쓴 것으로 재판에 회부하다니…’라며 선처를 애걸했다.

‘언론의 자유’를 말하며 호소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치 치하에서 저항운동을 했던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까뮈’가 나치협력언론인들의 선처를 구했다.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겨우 처형을 면한 일부 언론인들에 대해서도 다시는 언론기관에 종사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은 주홍글씨를 목에 걸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만큼 언론인은 특별한 존재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드골은 이렇게 회상했다.

‘언론인은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에 첫 심판대에 올려 가차없이 처단했다’

왜 지금 이런 글을 썼는가. 한국의 언론인이 침략군인 나치에 협력한 프랑스 언론인과 같단 말인가. 왜 언론의 긍정적 평가는 하지 않는가. 언론의 공은 전혀 없단 말인가.

있다. 사회에 공헌한 것이 많다.
그러나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다. 검찰과 경찰의 정의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닌가. 찬사를 요구하는가. 언론인의 사명과 책임은 시대를 넘어 동일하다고 믿는다.

악의 편에 섰던 언론과 언론인을 응징하는 것은 옳다. 언론은 그 어떤 것보다도 힘이 강하기에 피해 역시 크다. 왜 독재자들이 언론을 장악하려 하는가. 언론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언론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언론은 저항해야 한다. 양심을 버린 언론은 어느 시대 누구라도 다 같이 비난을 받아야 하고 역사에 기록이 되어야 하고 기록은 교훈으로 남아 후세에 전해져야 된다고 믿는다.   

나치협력 프랑스 언론인의 처형이 후세에 어떤 교훈을 남겼는가.

지금은 2010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 난지 65년이다. 왜 이 시점에서 나치에 협력해 처형된 프랑스의 언론과 언론인을 거명하는가. 지나간 역사에서 엄숙한 교훈을 배우기 위해서다.

8.15 광복 이후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전두환의 군부독재를 이겨내고 가장 빨리 민주화를 실현했다고 찬사를 듣던 우리가 다시 민주주의 후퇴를 탄식할 지경에 이르렀고 언론이 권력의 시녀가 되고 언론 자체가 권력 편에 섰기 때문이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비극이지만 맞다. 또한, 권력은 펜 끝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총 들고 권력을 잡은 자들이 언론장악을 위해 몸부림이다.

거기에 부화뇌동해서 언론이기를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친 권력의 시녀들.  

언론권력에 빌붙은 언론사의 명석한 기자들은 자신의 기사를 보며 어떤 얼굴을 할까. 공정하게 잘도 썼다고 득의의 표정일까. 왜곡의 달인이라고 비판하는 국민들을 뭣도 모르는 인간이라고 코웃음 칠까. 

그러나 결코 자기가 쓴 기사를 보지 않는다는 어느 기자의 고백을 들으며 일말의 양심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기보다 오히려 연민을 느낀다.   

그들은 변명한다. 처자식은 어쩌느냐는 것이다. 자신도 양심은 있다고 한다.
그렇다.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상황논리다.

한명숙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는 곽영욱이 말했다.

“검사님. 죽을 것 같습니다. 살려주십시오.”

혹시 살려주기만 하면 무슨 짓이라도 다 하겠다는 의미는 아닌가. 똥통에 거꾸로 매달려서라도 살고 싶은 인생이다. 그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우연은 기막히게 일치되기에 우연인가.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 정론을 포기한 언론인과 살기 위해 목숨을 구걸하는 곽영욱과 누가 더 인간적인가. 거짓일지라도 70노인의 구명호소가 더 인간적이 아닌가.

박연차와 검찰 빨대 그리고 언론의 삼중주는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검찰과 언론의 연대는 전직 대통령을 자살에 이르게 했다고 국민은 믿는다.

100년 동안의 가장 훌륭한 지도자로 국민이 뽑은 전직 대통령을 자살하게 한 언론은 자신들의 위대한 힘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가.

검찰 빨대를 그냥 따라가지 않고 언론과 기자의 사명을 한순간만이라도 생각했어도 비극은 없었다. 그것이 상식인지 아닌지 잠시만 자문해 봤어도 대통령을 자살하게 만든 공범으로 역사의 오명을 영원히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가. 지금 언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배부른 돼지에게 무슨 생각이 필요한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는가. 

2010년 1월 1일.

봉하 마을을 가득 메운 차량과 사람의 홍수를 취재는 안했어도 소문은 들었을 것이다. 연휴에 놀러 온 사람들일 뿐이라고 생각하는가. 할 일 없는 사람들이라고 믿는가.

들어라. 저것이 바로 국민의 아픔이고 국민의 오열이고 대한민국은 사랑한 노무현에 대한 사랑이다. 묘비 앞에 엎드려 우는 모습들을 보라.

노무현이 추울까 묘비 앞에 목도리를 놓고 가는 민심을 보라. 가슴이 미어지지 않는가. 노무현의 사저를 아방궁이라고 헐뜯었던 조선의 기자가 한마디 해야 한다.

이런 기사를 실은 언론도 한마디 해야 한다. 쓰레기라고. 언론이 저지른 죄악은 사과로서 지워지지 않는다.

행동으로 속죄해야만 용서받는다.

그들 자신도 얼마나 굴욕의 세월을 살아왔는가. 군부독재의 총칼 앞에서 무력하게 쫓겨난 치욕의 과거를 기억할 것이다. 백지광고를 내 준 국민을 잊었는가.

더구나 독재의 앞잡이로 동료를 직장에서 몰아낸 자가 바로 언론인 자신이라는 것을 더 없는 수치로 알아야 할 것이다. 기억하기도 싫지만 다시 한번 학습하자.

언론통폐합 드라마의 주연은 조선일보 기자출신의 허문도.

주일대사관 공보관으로 전두환에게 접근.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의 하수인으로 언론장악과 여론조작을 조언했다.

이원홍은 한국일보 편집국장 출신이다.

박정희 정권의 일본 공보관 관장으로 전두환 독재 출범 이후 KBS 사장으로 눈부신 활약을 한다. 대한민국의 방송을 한 손에 쥐고 흔들던 ‘위대한 왕 PD' 이원홍.

땡전 뉴스란 일그러진 명품도 그의 작품이다. 45분간의 뉴스 중에 30분을 전두환으로 도배한 그의 용기는 한국 언론사의 추악한 자화상이다. 이제 오늘의 언론도 '땡 전 뉴스'를 닮아간다.

서울신문 주필 출신의 이진희.

일찌감치 전두환에게 줄을 섰다. 대통령 중심제를 비판하는 사설로서 신군부 등장의 명분을 주었고 전두환 정부 출범 후 MBC 사장을 틀어쥔다.

취임 직후 전 직원들의 사표를 받아 90여 명을 추방했다. 대학살이다.
동료를 물어 죽이는 비정은 이미 언론사회에서는 지극히 당연하다.

지금 바로 보고 있지 않은가.

YTN에서 KBS에서 MBC에서 살생부가 춤을 춘다. 이래서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민주언론을 위해 죽은 자들의 통곡이 애처롭다.

이래야 하는가. 이렇게 살아야 되는가.

그들의 소망은 무엇인가. 인간의 영생을 믿는가. 그래서 영원히 영화를 누리며 살고 싶은 것인가. 부질없는 짓이다.

“지금 단잠에 빠져있는 국민 여러분, 일어나셔야 합니다.”

2010년 1월 1일 새벽 2시.

한나라당의 노동법 일방통과에 항의하는 민주당 김상희 의원의 애절한 호소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비웃음에 묻혀 메아리도 없이 사라진다.

이정희 의원의 격렬한 항의는 추미애의 대책 없는 망동에 맥을 놓는다. 
평생을 노동운동에 바친 권영길 의원이 통한의 눈물을 뿌렸지만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일방적으로 통과됐다. 언론은 무엇하고 있는가. 

“언론인 여러분. 깨어나십시오. 야만이 판을 칩니다. 법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들어야 한다. 듣고 써야 한다. 아니면 언론인 포기선언을 해야 한다.

2010년. 1월 4일.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연설을 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

자신감에 넘친다. 매사에 자신만만한 대통령이다.

언론이 춤을 춘다. 받아쓰기가 시작됐다. 신문은 하나만 필요하고 방송도 하나만 있으면 된다. 왜 귀한 종이를 없애는가. 왜 아까운 전파를 낭비하는가. 기자는 왜 또 이리 많은가.  

“성숙한 세계국가의 꿈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대통령의 목소리를 높지만 왜 이리 공허한가. 국정상황 인식 때문이다. 
대통령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독선과 아집, 소통 부재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 충돌과 파행이 끊이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누가 지적해야 하는가. 누구의 몫인가.
언론이 하지 않으면 누가 한단 말인가.

책임과 사명을 다 하지 않으면 언론이 아니다. 기자가 아니다. 왜 못하는가. 잘 길들여진 개는 짖지 않는다. 감시견이 보호견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둑을 보고 짖지 않는 개가 왜 필요한가. 폐기해야 한다.
죽음의 문턱을 수십 번 넘어도 죽음은 역시 견디기 힘든 공포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는다는 운명.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을 당당하게 산 사람만이 가능하다. 대통령도 죽으면 그 뿐. 기자도 역시 같다. 남는 것은 이름뿐이다. 그것도 기억해 줄 때만 남는다.

이 시대를 목격한 기자가 인생의 최후를 맞이할 때 해야 될 말이 있다.

“2009년 5월, 그때 너무 잘못했다. 몹쓸 짓을 했다.

우리가 노무현을 죽인 공범이다. 용서를 빈다.”

아닌가. 아니라면 당당하게 말해 보라. 왜 노무현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는지 말해야 한다. 모르는가. 그럼 세상은 왜 살았는가.

내게 묻는다. 왜 그리도 언론을 비판하느냐고 항의한다. 분명히 밝힌다.

언론의 책임을 방기했기 때문이다. 거부하기 때문이다. 시류에 영합해 책임과 의무를 휴지처럼 버렸기 때문이다. 불편한 것은 망각하기 때문이다.

강한 자에게 양처럼 온순하고 약한 자에게는 이리가 되는 우리의 언론. 그러면서도 자신들만이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착각하는 과대망상증 환자이기 때문이다. 수치를 모르는 이기주의자다. 완치불능의 정신결함 중증 환자다.

인생의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자식들에게 무슨 말을 남기려는가.

“애비는 기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너희들에게 자랑스럽게 남겨 준 선물이다.”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얼마나 존경받을 인생인가. 그러나 역시 얼마나 공허한 바램인가. 꿈에서나 이룰 소망이 아닌가.

나폴레옹이 유배됐던 엘바 섬에서 탈출했을 때 프랑스 언론은 이렇게 썼다.
“악마, 소굴을 빠져나오다”

나폴레옹이 리옹을 지나 파리로 진격했다.
“폭도, 리옹을 지나다"

나폴레옹이 수도권에 진입했다.
"도둑, 수도권에서 목격되다"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했다.
“나폴레옹, 파리에 도착하시다"

나폴레옹은 파리에서 하룻밤 잤다.
“황제폐하님. 백성들과 함께 하루 밤을 주무셨다. 황제 폐하 만세."

박정희의 5.16쿠데타가 일어났다. 육군사관생도들이 쿠데타지지 시가행진을 했다. 보무도 당당한 육군사관생도들의 행진을 KBS가 중계했다.

그때 임택근 아나운서는 이 나라 최고의 아나운서였다. 

나치협력 프랑스 언론인이 처형된 지 65년이 지났다.
왜 지금 다시 이 비극을 이야기 하는가. 서글픔에 눈을 감는다.

                                          

2010년 1월 5일

이기명 / 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저작권이 없습니다.

이기명 칼럼니스트 다른 글 보기

대통령님, 새 해, 저희들의 눈물로 묘비를 닦습니다
유시민은 지금 어느 길을 걷고 있는가
한겨레! 비판받으니 야속한가. 되돌아 보는 슬기를 갖자
정치보복은 MB 정권의 블랙홀
노무현, 다음은 한명숙, 유시민 그 밖에 또 누구인가?
국민은 KBS를 사랑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아니다.
한명숙 탄압과 정치검찰, 저질언론을 규탄하는 이유
한명숙을 지키자! 민주주의를 살려내자!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06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