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눈, 권력의 눈, 국민의 눈 그리고 기자의 눈
이제 양심은 지식인의 장식품일 뿐이다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03-16)
존경과 사랑을 받던 법정스님이 입적하셨다.
다비식은 온 국민의 슬픔 속에 끝났다.
한 시대의 양심이 떠나는 것을 아픔으로 지켜보면서
사람의 도리를 못하는 중생들을 부끄럽게 한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의 소유자’였다.
그 무엇도 소유하지 않았지만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만은 소유하셨던 법정스님의
마지막 모습은 현실의 인간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입에 올리기조차도 불경스럽지만 엄청난 탈세로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삼성의 이건희는 불과 몇 개월 만에 사면을 받고 세계를 돌아다닌다.
액수를 가늠할 수 없는 재산을 소유한 재벌과 밥솥 하나와
그릇 몇 개를 남긴 법정스님의 부엌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 없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작년에 돌아가셨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 많은 삶을 마감했고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자신의 반쪽이 잘려나간 것 같다는 탄식과 한을 남기고 서거했다.
삶의 유한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지만
마치 영원불멸의 삶을 살 것처럼 오만한 군상들도
실은 허공을 떠도는 한낱 자연의 티끌이다.
권력은 무엇인가. 재물은 무엇인가. 벼슬이 무엇인가.
법정스님의 다비식을 지켜보며 재벌과 권력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육신이 한줄기 연기되어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며
무소불위의 권력과 아까운 재물과 놓고 떠날 생각을 하면 얼마나 한스러울까.
법정스님의 생각하면서 다시 개 같은 인생을 생각한다.
개처럼 살아도 한평생이다. 대통령으로 살아도 한평생이다.
도적으로 살아도 한평생이다. 독재자로 살아도 한평생이다.
나라 팔아먹고 매국노로 살아도 한평생이다.
아무래도 죽어 썩을 몸인데 욕 좀 먹고 살면 어떠냐고 한다.
이렇게 살다 죽으나 저렇게 살다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남긴 이름으로 영원히 산다.
오명을 남기지 않기 위해 몸을 버린 선현들을 보며 옷깃을 여민다.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선서를 한다.
헌법 제69조는 대통령 선서조항이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
대통령이든 국민이든 사람들은 누구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법관은 법은 오로지 정의를 위해서 사용한다고 말한다.
언론은 권력 감시와 사회정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다짐한다.
기자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올바른 보도를 하며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고 다짐한다.
독도와 관련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는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사실이 알려지자
전 국민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주요언론은 침묵이다. 입에 재갈을 물렸는가.
2008년 7월 15일자 일본의 <요미우리>는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전 총리의 정상회담 내용과 관련해 보도했다.
"후쿠다 수상이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를
(교과서 해설서에)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통보하자
이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후쿠다’수상의 요구를 ‘지금은 때가 아니니 기다려 달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때가 되면 써도 괜찮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은 당연하다. ‘안 돼!!’와 ‘기다려’의 의미는 다르다.
당연히 이명박 대통령의 확실한 입장이 국민에게 전해져야 한다.
그냥 어물어물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이것은 대통령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영토문제다. 언론은 이 문제를 무겁게 다뤄야 한다.
그러나 아주 가볍게 생각한다. 아예 무시한다.
영토문제는 별로 대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인가.
국민은 침묵하지 않는다. 침묵하면 주권국가의 국민도 아니다.
청와대가 입을 열었다. ‘떠드는 것이 국익에 반한다’는 것이다.
반하는지 안 반하는지는 국민이 판단한다.
왜 언론은 침묵하는가. 침묵이 금이기 때문인가.
보도가 국익의 해를 끼치기 때문인가.
아니면 김길태가 자장면 한 그릇 먹은 사실이
훨씬 사회정의 구현에 이롭기 때문인가.
사실이 그런가. 대답 좀 듣자.
언론사 보도책임자들이 독도발언 외면의 이유를 밝혔다. 가지가지다.
‘보도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사실 관계를 알 수 없다’
‘진전된 팩트가 없다’
‘실체를 알 수 없다’
언론사 간부들의 이러한 인식이 옳은 것인가.
이 정도의 판단밖에 할 수 없는 편집책임자들의 머리인가. 한심하다.
국민이 다 알고 들고 일어나는 판에 똑똑하고 공부 많이 한
언론인이 이런 판단을 하니 불쌍한 것은 국민뿐이다.
만약에 ‘요미우리’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헌법 제66조 2항. ‘영토(領土)의 보전(保全)’이라는
대통령 책무를 적시한 헌법조항 위반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
권력자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을 유일한 장치는 언론이다.
언론이 침묵해 버리면 권력자는 두려울 것이 없다.
그래서 기자의 눈이 멀면 도리 없이 눈먼 개가 되는 것이다.
MBC를 포기했다는 국민들이 많다. 왜인가.
그래도 MBC는 믿는다는 국민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믿음도 산산이 깨졌다.
평 기자들에게 묻어봤다. 왜 기사가 국민정서와 거리가 있느냐고.
대답은 소신대로 못 쓴다는 것이다.
왜일까. 데스크에게 책임 전가다.
책임을 전가하다 보니 최종 종착점은 권력이다. 정치권력이다.
권력도 웬만한 권력이 아니다. 최고의 권력이다.
결국 최고 권력자의 의사가 언론을 틀어쥔다는 것이다.
언론은 허수아비다. 바지저고리다.
한국 언론은 존재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일그러진 최고의 권력을 제어할 힘은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한다. 누구인가. 국민이다.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민이다.
이래도 투표를 안 하겠는가. 선거에 기권을 하겠는가.
국회의원이란 최고의 직업이 있다. 이유는 다 알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산다. 그럼 할 일을 제대로 해야지.
할 줄 아는 것은 벙어리 짓뿐이다. 겁은 무척 많다.
언론에 대해서는 벙어리다. 무서워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무서워하고 존경하는 기자가 있는가.
두려워하되 기자를 존경하는 국회의원이 있는가.
한심하다. 기자들 앞에서 손 비비는 의원들. 그래서 잘 뽑아야 한다.
오늘도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은 진행됐다.
세기의 코미디를 계속 봐야 하는 국민들은 슬프다.
전직 총리를 불러다 놓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분노한다.
검찰은 이제 호프집 탁자의 안줏감이 됐다.
‘개콘’으로 비유된다. 수준 좀 높여야 한다.
출연하는 권력과 기자들은 연습 좀 제대로 하라는 요구다.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기에 이러는가.
참여정부 시절에 기자들을 보던 눈과 이명박 정부 시절인
오늘의 당신들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에서 다른 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가. 애정과 증오도 구별을 못하는가.
그렇다면 치유가 어려운 중병이다.
이제 언론의 중병을 치유할 명의가 나올 때를 기다려야 한다.
총리공관의 의자와 골프 모자를 잡아다가 죄를 물어야 하는
기막힌 한국의 법을 응징할 언론의 출현을 기다려야 한다.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과 곽영욱의 진술을 들으며
이제 검찰의 신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민들이 고민할 때가 됐다.
하늘의 조각구름처럼 오락가락 종잡을 수 없는
곽영욱식 진술로 죄를 묻는다면 귀신인들 견뎌 낼 것인가.
법이란 칼을 들고 있는 검찰의 신뢰가 무너질 때
국민은 누구를 믿고 살아야 되는가.
허위와 왜곡과 과장과 은폐로 점철된 보도를 보면서
국민은 절해고도에 버려진 절망감에 빠진다.
왜 검찰을 못 믿느냐. 왜 언론을 불신하는가.
믿을 수 있게 해야 믿지 않겠나.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시절 BBK 동영상은 결정적으로 신뢰를 무너트렸다.
그 후 정치가 방황한다. 그래서 신뢰는 정치인의 첫째 덕목이다.
모두들 눈을 크게 떠야 한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찬란한 태양이 빛나지 않는가.
2010년 3월 16일
이기명 / 전 노무현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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