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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에서 살아남은 자들

순수한 남자 2010. 3. 28. 12:23

천안함에서 살아남은 자들
번호 125510  글쓴이 초모룽마  조회 3863  누리 787 (787-0, 26:119:1)  등록일 2010-3-2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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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에서 살아남은 자들
(서프라이즈 / 초모룽마 / 2010-03-27)


TV도 없어 사건이 터진 줄 몰랐다. 문자를 받고 나서야 알았다. 뜬금없다. 이건 또 뭔가. 왜 서해에서는 그렇게 사건들이 터지는가. 급히 컴퓨터를 켜니 가장 먼저 눈에 뵈는 게 ‘실종자는 죄다 사병’이란다.

왜 하필 전부 사병일까. 이해하기 어렵다. 어둑한 바다 위에서 배가 침몰한다.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빠져들면서 그들은 얼마나 애타게 가족들을(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는 장교들?) 찾았을 것인가.

▲ 서해 백령도 서남쪽 1마일 해상에서 경비 활동 중이던 우리 해군 초계함 천안함(1천200t급)이 26일 오후 9시 45분께 침몰한 가운데 27일 오후 인천 옹진군 백령도 서남쪽 해상에서 해군 함정과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원들이 수색 작전을 벌이고 있다. ⓒ 뉴시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는 인간의 진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분명 바다는 가면에 가려진 인간성을 폭로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숱한 문학이 인간을 시험하는 바다를 주제로 삼는다.

<로드 짐>도 바로 그런 작품이다. 실제 선원생활을 경험했던 작가 콘래드는 <로드 짐>을 통해 우아하게 감춰진 인간의 치부를 드러낸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선장 아니면 항해사급 고위 선원이었던 백인 로드 짐은 어느 날, 배가 침몰하리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배에는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잠들어 있다. 대부분 동남아 토인들이다. 로드 짐은 순간적으로 고민한다. “선장은 배의 운명과 함께하라”는 말을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깨워, 자신들의 운명 정도쯤은 알려줘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나 그리되면 그의 목숨도 장담하지 못하게 된다. 그게 바로 바다다. 결국, 그는 침몰을 앞둔 배에서 ‘무의적으로’ 혼자 ‘뛰어내린다’. 그리고 혼자 살아남는다.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림과 동시에, 최고 문명이라는 자부하는 곳에서 최신식의 교육을 받은 근대적 인간, 로드 짐의 가면이 확 벗겨진다. 그리고 인간의 추악함과…. 그리고 뭔가 모를 공허함(죄책감일 텐데 본인은 그걸 모른다)으로 고뇌하는 인간만이 남는다. 콘래드는 <로드 짐>에서 세기 말의, 파탄 난 인간성을 그려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배와 최후까지 운명을 함께하는 선장의 아름다운 모습을 곧잘 떠올린다. 실제로 그런 위대한 케이스가 많았다고 한다. 영화 타이타닉이나 쥘 베른이 그린 네모함장의 이야기가 결코 허구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역사상 숱한 해전에서 자신의 전함과 최후를 같이한 영웅들이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 솔직히 그게 인간적이지는 않다. 그 상황에서 자기의 배와 함께 같이하는 것은 인간적이라기보다 초인적이다. 반신반인인 영웅에나 어울릴 법한 것이다. 어쩌면 로드 짐처럼 침몰을 앞둔 배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보다 기대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 죽음을 앞둔 모든 인간은 초라해지기 때문에. 그럴 때면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게 오히려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난다. 함장을 포함해 천안함의 장교 7명은 모두 살아남았다고 한다. 우연? 어두운 새벽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지금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진실은 묻힐 것이다.

아무리 경황이 없었더라도 장교로서, 책임자로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할 시간은 분명 있었을 거다. 이것은 꼭 밝혀져야 한다. 우리가 장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배와 운명을 함께하는 위대한 영웅이 아니다. 최소한의 노력은 하고 그것을 -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 - 나중에 솔직히 인정하고 책임을 지려는 모습이다. 그래야 로드 짐 꼴 나지 않는다.

▲ 최원일 천안함 함장(중령)은 18일 오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를 찾아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고 경위를 설명하고 최고 현장 책임자로서 사죄했다. ⓒ 엄지뉴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다. 그러나 그는 그 잘못을 인정하여 ‘자비로운’ 하느님으로부터 면책을 받고 농사를 짓고 아들 딸 낳고 번창하여 결국 인류의 조상이 된다. 프로이트는 “인류는 모두 유명한 살인자의 후예”라고 불렀다. 카인의 후예들은, 결국, 문화를 낳았다.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문화가 뭐 별건가. 바로 자기를 탓할 때 비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다. 독일은 나치의 잔학행위를 곧바로 인정하고 잘못을 빈다. 히틀러가 깽판 쳐놓은 문화대국 독일은 그렇게 극적으로 살아났다. 반면 일본은 어떤가?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다. 문화하고 일본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은 그냥 느낌이 아닌, 사실이다. 일본은 전혀 문화적이지 않다.

살아남은 자들, 그리고 그 웃대가리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자. 입만 열면 ‘격’을 떠들어대는 자들이 진짜인지 아니면 순 가짜인지를 가려낼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다. 과연 저들에게 문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실종된 사병들이 전원 살아나기를 빈다.


사족)

또 하나, 이렇게 하여 안상수, 무죄판결을 앞에 둔 한명숙 재판과 그로 인하여 확인될 떡검의 희대의 코미디, 바야흐로 불붙기 시작했던 4대강 반대 물결 등등이 묻히게 될 것인가? 조중동들은 예의 충동질에 나설 것이고……. 에이, 설마 그렇게 진행되겠나.

 

(cL) 초모룽마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2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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