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는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04-19)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강 명 희- (당시 수송초등학교 5학년)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오면은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먹고 저녁도 안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그리고 25일과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 말 안 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
4·19를 떠올리며 다시 이 시를 읽는다.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가 쓴 이 시를 읽으며 국민들은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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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하는 수송초등학생들. 시위 와중에 학교친구(6학년 전한승)를 잃은 서울 수송초등학교 아이들이 “부모·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며 거리시위를 하는 사진. ⓒ 한겨레 |
1960년 4월 19일.
서울 시민을 소름끼치게 하던 총성. 질주하는 소방차 버스에서 낙엽처럼 떨어지던 젊은이들. 아스팔트 위에 낭자하던 선혈.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생들이 모두 나와 이승만 독재를 규탄했다.
어린 강명희는 이미 오빠 언니가 왜 총에 맞았는지 누가 왜 총을 쏘았는지 그는 알고 있었고, 국민들도 알고 있었고 지금 우리는 그때를 기억하며 슬프다.
당시 한성여중 2학년인 15세의 진영숙은 어머니에게 유서를 남겼다.
“시간이 없어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
영숙이는 19일 오후 4시 수업을 마친 후 시위에 나가기 전, 집에 들렀다가 시장에서 장사하던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편지를 써놓고 거리로 나섰다가 성북 경찰서 앞 버스 안에서 경찰이 쏜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당시 내무장관인 최인규는 총은 쏘라고 준 것이라고 했다.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적을 쏘라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산 총탄이 젊은이들의 가슴을 뚫었다.
국민들의 분노는 독재였다. 영구집권을 꿈꾸던 자유당 일당독재는 부정선거를 자행했고 이에 항거하는 학생들과 민주인사들을 탄압했다.
마산에서 고등학생이던 김주열 군의 주검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다에 떠올랐다. 민심은 폭발했다. 국민인 내가 주인이라고 자각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국민의 저항이었다.
더 이상 참고 견딜 수가 없었다. 견디지 못하면 터지는 것이다.
어용교수가 판치던 대학가에서 고대교수들이 시위를 했고 교수들도 성명을 발표하고 거리로 나섰다.
4월 18일 시위를 하던 고려대학생들이 종로에서 정치깡패들에게 습격당해 자전거 사슬과 쇠파이프를 맞고 쓰러졌다.
거리에는 총 맞은 청년들의 시신이 뒹굴고 있었다. 부상자들을 구조하는 의대생들의 흰색 가운은 피범벅이 됐다.
그날 서울에서만 자정까지 약 130명이 사망하고 1,000여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정치권력의 앵무새이며 왜곡 편파 과장보도의 기수였던 서울신문이 불탔다. 경찰서가 불타고 ‘서대문 경무대’라고 불리던 이기붕의 집도 파괴됐다.
독재자 이승만이 하야 성명을 냈다. 이기붕은 이승만의 양자로 들어간 아들 육군소위 이강석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독재의 최후는 이렇게 참혹했다. 그 후 최인규 곽영주 이정재 임화수 등은 처형됐다.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것을 역사의 심판이라고 하는가.
우리의 귀가 따갑도록 듣는 소리가 있다.
3·1정신을 기억하자.
4·19 정신을 기억하자.
5·18 정신을 기억하자.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는가. 분노는 마치 이슬 같아서 아침에 잠이 깨면 스러지는가. 분노하지 않는 국민은 정치가 무시한다.
군사독재나 문민독재나 분노하지 않는 국민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치 물지 않는 개처럼 취급했다.
지금 우리는 말해야 한다. 국민을 대신할 언론은 사망했다. 이제 우리가 말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한나라당 정권에 대해서, 정치검찰에 대해서, 한나라당 국회에 대해서, 언론권력에 대해서 이제 우리가 외쳐야 한다. 피 맺힌 절규를 토해내야 한다.
4·19!!
그때 시인들은 이렇게 통곡했다. 이렇게 절규했다.
<마침내 여기에 이르지 않곤 끝나지 않을 줄 이미 알았다> -조지훈-
그것은 홍수였다. 골목마다 거리마다 터져 나오는 함성 “백성을 암흑 속으로 몰아넣은 이 불의한 권력을 타도하라” 너희들은 백성의 이름으로 처단하지 않고는 두지 않으리라 의병이여 저주여 법은 살아있다 백성의 손에서 정의가 이기는 것을 눈앞에 본 것은 우리 평생 처음이 아니냐 아아 눈물겨운 것 불의한 권력에 붙어 백성의 목을 조른 자들아 불의한 폭력에 추세하여 그 권위를 과장하던 자들아 너희 피묻은 더러운 손을 이 거룩한 희생자에 대지 말라.
<죽어서 영원히 사는 분들을 위하여> -박 목 월-
학우들이 메고 가는 들것 위에서 저처럼 윤이 나고 부드러운 머리털이 어찌 주검이 되었을까? 우람한 정신이여. 자유를 불러올 정의 폭풍이여. 눈부신 젊은 힘의 해일이여. 허나,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가 아무리 청사에 빛나기로니 그것으로 부모들의 슬픔을 달래지 못하듯, 내 무슨 말로써 그들을 찬양하랴. 죽음은 죽음. 명목(暝目)하라. 진실로 외로운 혼령이여.
거리에는 5월 햇볕이 눈부시고 세종로에서 효자동으로 가는 길에는 새잎을 마련하는 가로수의 꿈 많은 경영이 소란스럽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나간 것은 조용해지는 것 그것은 너그럽고 엄숙한 역사의 표정 다만 참된 뜻만이 죽은 자에서 산 자로 핏줄에 스며 이어가듯이 그리고 4·19의 그 장엄한 업적도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의 빛나는 눈짓으로 우리 겨레면 누구나 숨 쉴, 숨결의 자유로움으로, 온몸 구석구석에서 속삭이는 정신의 속삭임으로 진실로 한결 환해질 자라나는 어린 것들의 눈동자의 광채로 이어 흘러서 끊어질 날이 없으리라.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박 두 진-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이 붉은 선혈로 나부끼는 우리들의 깃발을 내릴 수가 없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절규를 멈춘 것이 아니다. 그렇다. 그 피불로 외쳐 뿜는 우리들의 피외침을 멈출 수가 없다.
불길이여! 우리들의 대열이여! 그 피에 젖은 주검을 밟고 넘는 불의 노도, 불의 태풍, 혁명에의 전진이여! 우리들 아직도 스스로는 못 막는 우리들의 피대열을 흩을 수가 없다. 혁명에의 전진을 멈출 수가 없다.
민족, 내가 살던 조국이여. 우리들의 젊음들. 불이여! 피여! 그 오오래 우리에게 썩어 내린 악으로 불순으로 죄악으로 숨어 내린 그 면면한 우리들의 핏줄 속의 썩은 것을 씻쳐내는, 그 면면한 우리들의 핏줄 속에 맑은 것을 솟쳐내는, 아, 피를 피로 씻고, 불을 불로 살워, 젊음이여! 정한 피여! 새 세대여!
너희들 이미 일어선 게 아니냐? 분노한 게 아니냐? 내달린 게 아니냐? 절규한 게 아니냐? 피흘린 게 아니냐? 죽어간 게 아니냐?
아, 그 뿌리어진 임리한 붉은 피는 곱디고운 피꽃잎, 피꽃은 강을 이뤄, 강물이 갈앉으면 하늘 푸르름, 혼령들은 강산 위에 햇볕살로 따스워,
아름다운 강산에, 아름다운 나라를 아름다운 나라에, 아름다운 겨레를 아름다운 겨레에, 아름다운 삶을 위해, 우리들이 이루려는 민주공화국 녹대공화국
철저한 민주정체, 철저한 사상의 자유, 철저한 경제균등, 철저한 인간평등의,
우리들의 목표는 조국의 승리, 우리들의 목표는 지상에서의 승리, 우리들의 목표는 정의, 인도, 자유, 평등, 인간애의 승리인, 인민들의 승리인, 우리들의 혁명을 전취할 때까지,
우리는 아직 우리들의 피 깃발을 내릴 수가 없다. 우리들의 피 외침을 멈출 수가 없다. 우리들의 피불길, 우리들의 전진을 멈출 수가 없다.
혁명이여! |
우리는 이제 광화문에서 촛불을 켤 수 없고 시청 앞에서 기도를 할 수 없다. 산과 강을 잃고 방송을 잃고 언어를 잃는다.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소중한 목숨이 스러진다.
누가 지켜보는지 겁에 질려 살아야 한다. 죄도 없이 무섭다.
1960년 4월 19일.
그때 스물넷. 젊음의 핏발 선 눈으로 읽던 시를 지금 다시 읽는다.
50년이 지난 지금 늙은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아아.
나의 조국. 우리들의 조국.
내 자식들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2010년 4월 19일
이 기 명(전 노무현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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