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난 군대 안 가도 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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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04-30) 요즘 초등학교 학생 애들 참 맹랑하다. 맹랑하다는 의미는 세상 돌아가는 걸 휑하니 꿰뚫고 있다는 의미다. 애들이 뭘 아느냐 하다가는 큰코다친다. 친구가 전한 얘기다. 초등학교 다니는 녀석이 지 애비한테 묻더란다. ‘아빠 난 군대 안 가도 되지.’ 애비가 눈이 똥그래 가지고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역시 대답이 맹랑했다. 자기 친구들이 말하기를 ‘니 아버지는 돈도 많고 권력도 쎄니까 군대 같은 데는 안 가도 될 거 아니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애들도 유난히 군대문제에 관심이 깊은 모양이다. 무서운 얘기지만 애들이 이렇게 된 것도 세태의 반영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아들의 난처한 질문을 받은 인물은 이른바 권력기관에 있다. 요즘 말로 빵빵한 데 근무한다. 군대는 물론 안 갔다. 이유는 신체검사 불합격. 앞으로 국회의원도 될 거라는 소문이다. 그럼 자신의 어린 자식에게는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 궁금하다. 직접 경험한 것이다. 난 57년 입대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훈련 좀 편하게 받고 훈련소 나와 좋은 부대 배속받는 것이 원이다. 헌데 훈련소 안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당시 훈련소장은 김 아무개 소장이었는데 전역하면 고향에서 출마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고향출신 훈련병은 훈련 끝나면 모두 훈련소에 배치됐다. 특혜다. 표 관리다. 마침 그때 훈련소를 소재로 한 영화촬영이 있었는데 빽 있는 훈련병들이 모두 촬영 엑스트라로 차출됐다. 훈련은 면제다. 특혜다. 편한 특과였다. 훈련소장은 전역 후 부정으로 처벌됐다. 6·25 전쟁이 나자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을 사수한다는 사기방송을 하고 대전으로 줄행랑을 쳤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버리고 야반도주한 임금과 분노한 백성들이 경복궁을 불태운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그래도 경무대는 불타지 않았으니 우리 백성들 참 착하기도 하지. 한강 다리 끊기는 바람에 피난도 못 가고 ‘비도강파’로 몰려 빨갱이가 됐다. 부산 피난지에는 ‘마카오 양복’으로 쪽 빼입은 병역기피자들이 득실거렸다. 얼굴은 기름졌다. 1952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 장군의 아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클라크 대장의 아들도 한국전 참전 용사였다. 8군 사령관인 벤프리트 장군의 외아들은 폭격기 조종사로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평양 상공에서 실종된다. 수색작전이 시작됐다. 못 찾았다. 규정된 수색시간이 끝나자 벤프리트 장군은 수색을 중지하라고 했다. 자기 아들만 특별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자 모택동 주석의 아들 ‘모안영’도 전투에 참가 전사했다. 시신을 중국으로 옮기려는데 모택동이 지시했다. 전사한 땅에 묻으라고. 모안영의 시신은 평안남도 회창군 ‘지원군열사능’에 안장되어 있다고 한다. 1차 대전에 참전했던 전몰 독일 장병의 수기를 읽었다. 귀족출신도 많았다. 러시아의 혹한 속에서 그들은 얼어 죽었다. 수기에는 애끓는 조국애가 있었다. 제1차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고위층 자녀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에서 2,000여 명이 전사했다. 포클랜드 전쟁에서는 여왕의 아들 앤드루 왕자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6·25 전쟁에서는 미군 장성 아들 142명이 참전해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였다. 높은 지위와 고귀한 명예. 그들은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다 한 것이다. 모범을 보인 것이다. 그래야만 국민이 믿고 따른다. 해군사관학교를 나오고 해병대 장교가 된 고등학교 동창이 월남전에 참전 부상을 당하고 훈장 받고 전역했다. 그는 이제 국립묘지에 있다. 그가 생전에 전한 말이다. 전투 중에 소대장이 앞장서지 않으면 절대로 사병들은 뒤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 취재차 현충일에 친구와 현충원에 갔다. 어느 묘비 앞에서 오열했다. 바로 자신의 전령 앞에서다. 지뢰를 발견하고 제거 중 저격을 당했다는 것이다. 자기 대신 전사했다고 오열했다. 이제 군대 면제받고 기피한 우리 고관대작들의 얘기는 지겹다. 듣는 국민들도 지겨울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 병사들의 영결식에서 다시 한 번 특별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의 아이들이 이 담에 커서 자기도 아버지처럼 군대 안 가도록 해 달라면 뭐라고 할 것인가. 지금은 세상이 달라져서 안 된다고 할까. 이제 밝혀졌지만, 침몰 천안함의 병사들은 가정은 형편이 어려웠다. 모두가 타고난 팔자 아니겠느냐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혹시 어려운 국민들의 소외감이 이런 데서 분출된다면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대학에는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유학을 와서 공부한다. 중동전쟁이 터졌다. 이스라엘 학생들과 아랍계 학생들이 모두 사라졌다. 무슨 일일까. 이유가 기가 막힌다. 이스라엘 학생들은 조국을 위해 참전하기 위해 귀국을 했고 아랍의 학생들은 전쟁에 나가라고 할까 겁이 나서 도망을 친 것이다. 국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다시 한 번 천안함 영령 47위의 명복을 빈다. ▲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 내 안보공원에서 거행된 영결식 2010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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