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조와 격조를 찾아
(서프라이즈 / 런던가이 / 2010-10-12)
80년대 광주 민주화 항쟁 이후 사복경찰들이 대학캠퍼스를 그물망처럼 옥죄며 강의실마다 잔디밭마다 도서관마다 죽치고 앉아 있던 시절이 있었다. 시위를 하더라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도탄에 빠진 민중들을 구합시다’라는 잉크등사기로 민 유인물을 뿌리면 사오 분 안에 진압되던(?) 시대였다. 독재자 전두환이가 강압 통치로 대학을 짓누를 때 가물에 콩 나듯이 간혹 용맹한 동지가 있어 커다란 전나무 밑둥지에 불을 지르고 구름 걸린 나무꼭대기에 메가폰 하나 달랑 들고 매달려서 목이 터지라 외치면 소화기로 불 끄기 전 한 30분 안에 수천의 학우들이 스크럼을 짜고 시위를 시작한다.
시위를 하는 동안 대오가 자꾸 갈린다. 통제불능상태에 이른다. 백골단 사복형사들이 시위 대열의 맨 앞줄과 맨 뒷줄에 서서 대오를 흩트리고 바로 연행해 가기 때문이다. 골짜기마다 건물 모서리마다 육박전이 벌어진다. 발길질하고 주먹다짐도 한다. 연행되는 학우들을 구해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하이라이트는 메가폰 들고 불길 치솟는 나무 꼭대기에서 선동하다 탈진한 주동자 쟁탈전이다. 몇 번이고 백골단 사복경찰들에게 뺏겼다가 다시 찾아오고 피 터지는 싸움이 지속된다.
전나무가 다 탈 즈음 시위는 종지부를 찍는다. 최루탄 가득 탑재한 페퍼포그 차가 진입하고 전경들이 지랄탄을 쏘아대면서 학내를 진압한다. 문제는 그날이 주말이면 최루탄 원액과 물의 배합비율을 알맞게 썩어서 쏘아 댈 수 있는 고참들이 다 외박 나가고 졸병들이 최루탄 원액과 물의 배합비율을 제멋대로 썩은 채 쏘아 대기 때문에 학교는 완전 초토화된다. 얼마나 최루탄 원액을 많이 썩었는지 교정의 나뭇가지마다 최루액이 남아 일주일이 지나도 매캐한 최루가스가 끝 간데없이 난무한다. 캠퍼스만 그랬을까.
강포한 독재시대의 한 단면이다. 돌이켜 보면 드높은 격조가 돋보이는 ‘지조’의 시대였다. 시대와 역사를 부여안고 독재의 철벽에 머리를 차돌멩이 삼아 맞부딪히며 흔쾌히 목숨 내놓을 수 있는 뜨거운 시대였다. 질곡보다 깊은 역사의 수렁에 몸 던진 거다. 생양아치 같은 놈들이 군홧발로 정권을 탈취하고 생떼 같은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훅훅 불어대던 시대였다. 양복보다는 철모가 멋져 보이는 불한당들이 제멋대로 국민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여차하면 조져도 되는 시대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은 30여 년이 훌쩍 지나 민주주의의 시대다. 2010년을 훌쩍 지나가고 있던 시점에 30년 전 철모 쓴 치한들보다 덜 하지 않는 극심한 꼴통들이 넥타이 매고 감색양복 멋들어지게 입고 때로는 제법 뿔 테 안경 하나 잡숫고선 조국을 통틀어 제 꼴리는 대로 난도질하고 있다. 쥐새끼들이 시궁창에 있지 아니하고 엄지 크기만 한 머리 달고 헐렁한 양복 입고 청와대 지하벙커에 정부청사에 또 여의도 국회에 득실대고 있다. 군홧발로 국민들을 짓밟던 놈들보다 더 교묘하게 더 그럴싸하게 국민들을 못살게 굴고 있다.
격조를 기대하는 게 아니다. 참으로 ‘지조’를 기대하는 게 아니다. 기본은 가져가야지. 안 그런가. 입으로만 ‘국격’이니 교양 있는 듯 얼굴 활짝 웃으면서 뒤로는 자식들 친척들 가까운 사람들 다 한 자리씩 안겨 주고 있는 허무맹랑한 무리들이다. 이 정권 끝나면 제대로 한번 타작질을 해야 마땅하다. 누구보다도 공의로웠던 노무현 대통령을 모멸감과 굴욕감을 줘서 기어코 부엉이 바위로 내몬 장본인들이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청와대로 직접 전화까지 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단다. 썩을 놈들. 역사는 흐른다. 일견 거꾸로 가고 비켜나가게 보여도 큰 물줄기는 의연하다. 그래서 역사는 역사인 게다.
나랏일 맡은 자일수록 수신제가하고 검약하게 살아 모범을 보여야 마땅하거늘. 가까이 조선시대만 봐라. 조선시대까지 갈 것 없다. 구한말과 을사늑약 이후에만 봐라. 격조 높은 양반들이 독립과 해방의 드높은 대의에 온 집안이 하나 되어 남부여대하여 소달구지 끌고 북만주 허허로운 벌판을 풍찬노숙하며 헤매고, 무거운 돌 목에 드리우고 더러운 친일파들에게 절창의 시를 쓰고선 깊디깊은 연못에 홀라당 목숨 걸기도 하고, 십 여일 곡기를 끊고 말라 비틀어 돌아가시기도 했다. 거꾸로 나비 넥타이 매거나 또는 나까무라 모자 하나 걸치고서 영원한 일본제국의 번영을 간절히 소망하며, 약간만 조선사람 업신여기고 조금만 생까면 땅도 받고 작위도 받고 참 신나는 시절을 만난 놈들도 있다. 일본놈들보다 더 조선사람 못살게 굴었던 그놈들이다. 머리끄덩이 잡아채서 저잣거리에서 풍차 돌리던 놈들은 어김없이 일본놈들이 아니고 친일부역세력들이다.
그 가난한 민족 쪽박까지 걷어차면서 한 푼 두 푼 때로는 떼기 채로 끌어모아 일가를 이룬 거다. 이미 일제강점기 때 말이다. 해방을 맞아 미국에 빌붙어 밀가루에 버터에 손 벌리며 머리 조아려 한 몫 더 챙긴 수구꼴통 세력들이다. 그 공의롭지 못한 재산을 기반으로 귀족행세하고 거드름 피우며 자식들 미국 보내고 유럽 보내서 공부시켜 다 한자리 차지하고 지식인입네 식자네 가문이 어떻네 입방정을 놓아 쌓는 거다. 50년이 넘었으니 유구한 역사를 지닌 가문들이 된 거다. 제기랄. 모두들 눈물겨운 빈한한 시절을 겪었다나. 자기들 말고 옆에 있는 숱한 생채기 안고 살아가는 대다수 서민들의 고통을 제 것인 양 감정이입시킨 거지.
내가 한자리 차지했으니 내 아들 딸 내 조카들까지 평생 먹고 살 만한 넉넉한 자리 하나 정도야 마련해 주어야 도리지. 조금만 눈감으면 되고 조금만 낯짝 뜨거우면 되는데 그걸 왜 안 해. 다 하는데 말이야. 그 지조와 격조를 상실한 군상들이 지금 이명박 설치류 정권 아래에서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거다. ‘이명박 장로의 전과 14범. 거 참 껌 값이지. 모범을 삼아 전진해야지. 남세스럽지만 드러난 것만 해서 그 정도지 숨겨진 모든 것까지 다 까발린다면 휴우 아찔하다. 천하의 수구꼴통 찌라시들 조선, 중앙, 동아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을 거다’라고 독백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국이니 역사니 시대가 고려대상이 아니다. 4대강 유역 삽질하면서 이명박 가카와 영포대군 이상득 씨랑 친한 포항 영덕 영일만출신들 소위 영포라인들만 불도저 들이대고 모래 팔아먹고 있다지 않은가. 국민 세금 몇 십조 들여서 자기네들 배만 불리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고급 야채 생산하던 하천지역 농지 다 갈아엎어 놓고선 배추니 야채 값 안정시킨다고 생똥 빼고 있단다. 차라리 눈 가리고 아웅을 해대라. 어설퍼도 진정성이라도 있지. 서울 시민 세금 갖고 배추 싸게 공급한다고 시민들 줄 세우고 5시간씩 6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놈들의 뇌 구조가 심히 의심스럽다. 엄지 크기만 한 쥐대가리들 아닌가. 배추 싸게 공급받지 못한 대다수 시민은 세금만 내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으라네. 이명박 가카의 눈물쇼 어묵쇼 뻥튀기쇼 저녁 종합 뉴스만 보고 속 쏠리게시리 그저 앉아 있으랍신다. 할렐루야 찌찌뽕뽕이다.
군홧발로 지조와 격조를 압살했던 지난 시절에는 사람들만 괴롭힘을 당했는데, 지금 돈과 힘으로 지조와 격조를 삽질로 매장하고 있는 이명박 가카의 시절에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연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서민들의 몫인 복지비 전용해서 대대적인 환경파괴에 올인하고 있다. 그저 제 속들만 차리는 거다. 전공이 삽질이라서 그렇게 생똥을 싸고 있는지 이해는 간다. 하지만 삽질 가지고는 안 되는 수많은 분야들마저 삽질로 덤벼드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암울하지만 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가. 지조와 격조를 되찾아 오게 칼을 벼리자.
런던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