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헤스 그리고 황장엽
주체할 수 없는 이명박 정권의 열등감
(서프라이즈 / 내과의사 / 2010-10-13)
1941년 5월 10일. 나치 독일 2인자인 부총통 루돌프 헤스가 단신으로 비행기를 타고 영국에 불시착한다. 그 당시 독일은 전 유럽을 석권하고, 마지막 남은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연일 치열한 공중폭격을 퍼붓고 있었다. 한마디로 나치 독일 최전성기, 영국의 풍전등화 상황이었다.
헤스의 목적은 영국과의 ‘단독 강화’였다. 물론 그것은 히틀러의 지시가 아닌, 헤스가 독자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영국 역시 독일을 쳐부수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각오로 총력전을 벌이고 있었으므로(결국 자본주의 영국은 ‘공산주의 악마’ 소련과 한패가 된다.) 헤스의 강화 제스처가 무엇이든 아예 관심이 없었다. 헤스는 곧바로 전쟁포로가 되어 종전까지 억류되었다가 전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종신형을 언도받고 복역 중 1987년 사망한다.
헤스의 기행(奇行)은 2차 대전의 수많은 미스터리 중 하나이다. 물론 그가 영국으로 건너올 당시 이미 명목상 부총통이었을 뿐, 나치 독일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왕따’에 가까운 처지였다고 하지만 초기 나치당의 발전과 정권 창출에 적지 않게 기여한 그의 경력으로 미루어 볼 때 그의 단독 강화를 위한 영국행은 석연찮은 구석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를 둘러싼 온갖 음모론이 횡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영국이나 독일 모두 헤스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점이다. 영국은 헤스를 처음부터 귀순자나 망명자가 아닌 전쟁포로 취급을 했고, 독일 역시 헤스를 애시당초 없는 존재로 여겼다. 2차 대전 후 전개된 동서 냉전에서 거물급 하나가 상대방 진영에서 넘어오면 요란스럽게 선전도구로 활용되던 상황과 비교하면 흥미로운 현상이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장례식이 치러진다. 나는 그가 살아온 삶이나 선택에 별 관심은 없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점은 그의 월남 이후 그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모든 일들은 냉전시대 거물급 망명자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한때 주체사상의 핵심이던 그의 망명을 북한 체제의 치명적 결함을 입증하는 증거로서 적극 활용하였고, 북한은 그의 변절에 대해 한편으로는 무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비난하고, 남아 있는 그의 가족에 대해서는 잔혹스런 보복을 가한 모양이다. (우리 쪽 보도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그리고 나에게 있어 황장엽의 기억은 이른바 이 땅의 ‘보수’들이 아쉬울 때 가끔씩 매스컴에 등장하는 ‘배우’였다는 사실 하나이다.
황장엽, 그의 망명은 결코 북한 체제의 붕괴나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과 북한에 대한 평가와 위상 역시 그의 망명으로 인해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남북 관계에서 그의 존재가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순간은 곧 남북 관계의 긴장과 냉각을 의미했다. 결국 그의 월남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는 냉전의 틀을 벗어난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거다.
내가 평가하는 황장엽 망명의 긍정적인 측면은 단 하나이다. 북한이 버블젯트 어뢰를 보유했는지, 그것을 운용할 잠수정이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동네 양아치 끄나풀 수준의 정보 수집력도 갖추지 못한 대한민국 정보기구에게 황장엽급 고위 정치인은 30년 이상 우려먹을 ‘정보의 산실’이 되었으리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망명 10년이 넘도록, 그리고 죽어서도 정부의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일까.
루돌프 헤스와 황장엽의 공통점은 최고위 권력자로서 적성국 행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동기와 선택 이후의 운명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전혀 인정받지 못했지만, 어쨌든 헤스의 동기는 전쟁의 종식과 평화를 위함이었다. 반면 황장엽은 자신이 이룩한 체제에서의 좌절이 동기였다. 하지만 황장엽의 자기 부정적 선택은 대한민국 체제 우월 과시를 위한 선전도구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들을 둘러싼 국가들의 반응도 극과 극이다. 영국에서의 헤스는 전쟁포로와 종신 전범의 처분을 받는다. 반면 대한민국의 황장엽은 영웅이 되었다. 나치 독일은 헤스를 거의 무시했고(물론 히틀러는 그를 망상가라고 비난하긴 했다.), 북한은 황장엽을 증오하고 저주했다. 도대체 이러한 차이의 이유는 무엇일까.
2차 대전의 영국과 독일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총력전, 그야말로 국가와 민족의 명운을 건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과 ‘지면 죽음’이라는 절박함과 비장함이라는 감정이 두 나라를 지배했다. 그런 상황에서 끈 떨어진 장수들이 상대방으로 넘어가 몸을 의탁한들, 그것이 싸움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헤스에 대한 영국과 독일의 반응의 이유이다.
죽은 황장엽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고, 국민 최고 훈장을 추서 받았다. 그 소식을 접한 나의 심정은 천안함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장병들이 경계실패를 대가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을 때와 거의 다르지 않다. 과연 황장엽은 대한민국, 아니, 한반도와 한민족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일까. 이미 막을 내린 체제 우월 경쟁의 도구, 정보의 산실이라는 의미 외에 그에게 무엇이 있어 그는 죽어서도 화려한 예우를 받아야 할까.
결론은 이거다. 이명박 정권은 여전히 북한보다 우월한 정치체제임을 국제적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인정받으려는 거다. 황장엽 같은 거물이 자기 나라 버리고 택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끝내주게 좋은 나라이고, 그런 인물을 화끈하게 대접해주는 통 큰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이명박 정권은 선전하고 싶은가 보다.
유치원 남자 꼬마에게 ‘너 여자지?’하고 계속 놀리면 성질 급한 아이는 바지를 내리고 고추를 보여준다. 초등학교 1학년만 되어도 그런 놀림엔 끄떡없다. 황장엽에 대한 극진한 예우에서 나는 이명박 정권의 유아적 몸부림을 보게 된다. 그들의 안간힘은 오히려 자신들이 북한 정권보다 열등한 정치집단으로 찍히지 않았나 하는 조바심과 열등감의 발로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권력 세습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생각이 든다. 핏줄로 권력자를 계승하는 짓거리는 나의 시각으로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적지 않다. 하지만 돈과 지역과 학맥 따위로 기득권을 세습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먼저 자각한다면, 기득권 세습에 대한 비판의 화살이 어느 쪽으로 먼저 향해야 할지 명쾌해진다.
결국 열등감이다. 죽어서 훈장 달고 국립묘지로 향하는 황장엽도, ‘3대 세습’이란 단어를 되풀이하며 비난의 목청을 높이는 우리네 언론들도, 주체할 수 없는 열등감에 시달린다는 강한 반증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난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 아닌 북한에까지 열등감을 발산해야 하는지 말이다.
내과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