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죽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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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10-14) 말이나 되는 소리로 시비를 걸라. 누워서 공중에다 침을 뱉고 얼굴에 떨어지는 침을 더러운 줄도 모르는 이른바 진보논객이란 지식인들. 잠시 침 뱉기를 멈추고 거울에 나타난 자신의 얼굴을 보라. 침이 묻었던가. 부끄럽지 않던가. 추악하지 않은가. 생각이 같은 친구에게 붓을 들라고 했다. 돌아오는 소리가 무엇인지 아는가. 같은 언론에 몸담았던 처지라 글쓰기가 거북하단다. 그럴 줄 알았다. 그걸 의리라 하는가. 의리들 참 좋아한다. 글쓰기 포기를 의리로 포장하고 어디 가서 지식인이란 소리 입에 담지 말라. 양심이 호통을 친다. 지금 이정희가 당하고 있다. 절해고도에 동댕이쳐진 한 마리 짐승처럼 신음하고 있다. 왜인가. 우리 민족 모두가 천형처럼 목에 감고 사는 분단 때문이다. 아무리 벗으려고 해도 더욱더 조여 오는 맹수의 발톱 같은 증오 때문이다. 참여연대도 끼었다. 아직 멀었는가. 언제까지 계속해서 열정적으로 물어뜯을 것인가. 맛은 좋은가. 아직도 배가 부르지 않은가. 하이에나처럼 왕성한 식욕이다. 동물의 뼈도 소화시킨다는 그 무서운 소화액을 분단의 비극과 증오를 삭히는 데 써먹지는 못하는가. 이른바 진보라고 하는 학자와 정치인들이 이정희를 깔고 앉아 팬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시비가 엉뚱한 곳으로 튀기 때문이다. 색깔론이겠지. 또한 이들은 있지도 않은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길길이 뛸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진보라는 정파의 우두머리와 진보언론인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논객이 북한의 세습체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회분위기에 편승을 했는지 소신인지는 모르되 되게 두들겨 팼다. 신바람이 났다. 꼴통들의 박수가 터졌다. 신바람이 났다. 말리는 사람도 없고 일방적인 싸움이니 얼마나 어깨춤이 나겠는가. 그러나 이게 무슨 신바람인가. 보자기 씌우고 패기 아닌가. 사디스트들의 쾌감인가. 이정희에게 강펀치를 날린 것은 진보논객이다. 이어 거들고 나선 것이 진보파 우두머리. “북한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인데, 중요한 현상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진보정치를 포함한 모든 정치세력의 기본적 의무다. 이정희 대표의 선택은 솔직하지 못하다.” 남들은 모두 세습체제를 때리는데 너는 왜 가만히 있느냐. 너 좀 이상한 사람 아니냐. 이거 아무래도 수상하다. 대한민국 국민 맞아? 이정희가 입을 열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우리 당의 판단이며 선택이다. 이것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면 받을 것이다.” 논란이 번져나갔다. ‘진보도 북한을 비판해야 한다’는 주장과 “남북관계 파탄도 감수하라는 말이냐”는 주장이 새게 부디 친다. 관심이 쏠렸다. 정당사상 최초의 ‘40대 당 대표’로서 화려한 조명과 기대와 사랑과 질시를 함께 받고 있는 이정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싸움이니 왜 볼거리가 안 되겠는가. 이정희가 당하는 첫 번째 시련이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무슨 시련. 원래 이 세상 인간들이 그렇게 되어 먹었는데.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세상이다. 이름 좀 나니까 씹어 돌리는 거다. 다시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노무현이다. 아아. 노무현이 별처럼 등장했을 때 그를 물어뜯던 언론이며 얼굴들이 떠오른다. 역시 이름을 대면 트집을 잡을 것이 분명해서 한 마디로 줄이면 그게 바로 ‘노무현 죽이기’였고 지금이 다름 아닌 ‘이정희 죽이기’라고 생각한다. 그때를 생각하면 가소롭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다. 그때 보수언론이라고 하는 매체와 꼴통 논객들이 얼마나 날뛰었는가. 그래서 하늘에 별 노무현은 더욱 빛나고 꼴통들은 나중에 뒤통수를 치면서 죽 쒀서 누구 줬다고 후회를 했을 것이다. 지금도 결국은 그렇게 끝이 나겠지만 하는 짓거리가 너무 유치해 몇 마디 하는 것이다. 이정희와 한편인 듯도 하고 지금 보니 전혀 아닌 것도 같은 진보의 한 축이 이정희에게 심한 소리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원래 바닥 좁은 진보의 마당에서 아름답게 돋아나는 이정희란 싹이 우선 싫고 본능적으로 무섭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차제에 아주 싹을 잘라? ▲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이정희를 보는 다른 인간들도 별로 다르지는 않고 진보논객이라는 인물들은 괜히 감초 역할 좀 하려다가 밑천도 못 건진 꼴이 됐다. 어디에나 끼지 않으면 좀이 쑤시고 몸살을 앓는 인간들이 있는데 그런 꼴이 됐다. 그러니 나 같은 인간에게 욕을 먹는 게 아닌가. 민주당을 보라. 오랜만에 약게 논다. 절대로 이정희 대표의 편은 아닌 것 같은데 두루뭉수리다. 대변인의 말씀인즉 이렇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우리로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박지원 원내 대표의 말씀은 어떠신가. “북한 사람들의 상식에 따른 것”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것인가. 역시 머리 좋다. 황장엽의 사망에도 요령 좋게 행동했다. 하기야 박지원은 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남북화해와 소통에도 공헌한 역사적 인물이 아닌가. 이제 정말 얘기 좀 해 보자. 왜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서 미국정부는 공개적인 비판을 하지 않을까. ‘너희들 참 잘했어!’ 하고 세습에 동의를 해서일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기서 좀 빠져야겠다.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미우나 고우나 대화의 상대이고 대화의 문은 항상 열어놔야 한다는 생각일 것이다. 바로 전략적이라는 것이다. 중국도 아무 말 안 한다. 물론 우방이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도 공식 입장은 밝히지 않는다. 누군 속이 없어서 말을 안 하는 줄 아는가. 어느 때고 열어놔야 할 외교의 문은 그렇게 쉽게 열고 닫고 미친X 널 뛰듯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통일부나 외교부도 입 꽉 다물고 있다. 모처럼 신통하다. 상주는 가만히 있는데 곡쟁이가 더 슬픈 짝이다. 그것을 바로 가관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남북관계가 어느 지경인가. 도무지 예측 불능이어서 골육상쟁의 참상을 겪은 사람은 잠이 안 온다. 이정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북한에 대해서 뭐라고 욕을 해야 하겠는가. 박정희 시절 내가 반공드라마 쓰듯이 민족반역자라고 욕을 해야 하는가. 비난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북한체재의 동의하고 찬성하고 박수 치는 것인가. 이정희가 판문점 임진각 다리에서 북한세습 비난풍선이라도 띄워야 하는가. 편작이 어떻게 대붕의 뜻을 알랴 만은 적어도 꽉 막힌 남북관계에 바늘구멍만 한 숨통이라도 열어놔야 한다는 깊은 생각이었다면 알아들어 먹을 것인가. 그래도 여전히 비난을 계속할 것인가. <남과 북의 정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서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관계 문제들을 화해와 협력, 통일에 부합되게 해결해 나가기로 한다.’> 폐기하라고 주장할 것인가. 이정희를 비난하는 진보세력은 임진각에 가서 확성기 틀어대고 비난 한번 해보라. 그래야 확실하게 자신들의 본심을 온 국민에게 알리지 않겠는가. 물론 울산에서 신문을 절독한다고 선언한 것도 애들 같은 생각이다. 그렇게 감정으로만 대응하다 보면 마누라하고 이혼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보수언론이나 또 다른 진보세력이 북한세습을 인정하고 않고는 상관없이 북한의 3대 세습은 이루어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현실이다. 다시 말하면 기정사실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식이 애 낳아서 들어 왔는데 어쩌랴.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해도”라는 표현은 세습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려 깊고 신중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지금 정부가 북한체제에 정면으로 대응을 하는 경우 이명박 정부도 상대를 잃어버린다. 이것이 바람직한 행동인가. 인정하지도 않는 정권과 무슨 대화를 한단 말인가. 우리 언론의 자랑스러운 얼굴을 보자.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에 참 용감하게 저항했다. 구속과 해직을 당한 기자들 말이다. 죽기도 하고 폐인도 됐다. 자식들 공부도 제대로 못 시켰다. 온갖 회유에도 무릎 꿇지 않았다. 송건호 선생이 고등학교 은사다. 반면에 혀가 닳도록 빨아 준 언론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독재정부가 ‘임마. 뛰어! 하면 순식간에 백 미터는 뛰었다. 그렇게 말 잘 들었다. 지금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지금 좋다는데 가 있다. 심장은 잘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같은 힘 있는 국가의 행동은 눈 밖에 일이다. 거기 왜 끼어드느냐다. 그럼 이정희 비판에는 무슨 실익이 있는가. 있다. ‘노무현 죽이기’같은 저질스런 작태다. 변태들은 남의 고통을 즐긴다고 한다. 똘똘한 언론이니까 잘 알 것이다. 국민의 자존심이 팍팍 상하는 현안에 대해서 이정희만큼 온몸으로 싸워 온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얻어맞아 터지고 쓰러지는 노동운동 현장에서 혹은 집회결사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잘난 대한민국’에서 백주의 젊은 여성국회의원이 어깨가 다 드러난 체 빗속에서 경찰차에 실려 가며 목놓아 통곡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이정희는 그렇게 살았다. 폭우 속에서 3보 1배 하는 이정희의 얼굴에서 거짓을 읽은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이제 ‘이정희 죽이기’ 같은 못 된 짓거리는 그만두기 바란다. 이번 논쟁의 달린 댓글을 하나 소개한다. <이른바 진보 언론의 무기력과 보수의 노예적 맹종이 지금 어디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가.>
2010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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