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운명적 패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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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10-13) 덕담 좀 했다. 축하한다. 잘 좀 해라. 이 정도다. 민주당이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는지 열 받게 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 민주당의 책무가 매우 무겁고 국민들 역시 그래도 제1야당인데 하면서 제대로 좀 해 주길 열망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냥 무조건 격려와 칭찬을 하면 덕담이 될 텐데 반갑지 않을 내용을 쓰는 이유가 뭐냐고 시비 걸 사람이 분명 있겠지만 그게 아니다. 먼 길 떠날 때 준비는 착실히 해야 한다. 자동차로 치면 정비를 잘해야 한다. 점검을 제대로 했는가. 경비는 충분한가. 팀의 조직은 잘 되었는가. 잘 되겠지 내 생각만 하다가 탈이 나면 보통 낭패가 아니다. 더구나 민주당의 경우는 국민들이 정권교체 세력의 예비 1순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매를 맞더라도 약으로 생각해야 한다. 매도 제대로 맞으면 보약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배를 모는 선장의 책무는 매우 중요하다. 잘못하면 배가 침몰한다. 배만 침몰하는 것이 아니라 선원들도 함께 간다. 물론 침몰한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지만. 억울하게 잘못 없이 죽는 사람이 문제다. 민주당은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하는 일도 있는 듯, 없는 듯 맺고 끊는 것이 없어 국민들에게 존재감이 희미한 것도 사실이다. 거기다가 웬 파벌은 그렇게도 고질인지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기어올라갈 판이다. 기대를 모았던 전당대회는 486들이 초를 치는 바람에 국민의 기대를 바람에 날려 보내고 조랑말 3마리 중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의 순서대로 메달을 목에 걸었다. 싱거운 전당대회였다. 자기들만의 만세삼창이었다. 이렇게 싱거운 전당대회도 보기 힘들다. 강원도에 칩거하며 수염 더부룩하게 기르고 닭 키우며 와신상담(?)하던 손학규가 당 대표가 됐다. 누가 뭐래도 대표는 대단한 것이다. 권한도 막강하고 할 일도 많다. 제1야당의 대장이 아닌가. 더구나 그의 꿈은 대통령이다. 비록 한나라당에서 꿈을 펼치지 못하고 3등의 쓰라린 가슴을 안고 탈당을 했고 민주당에서도 후보가 되지 못했지만 아직도 꿈은 시퍼렇게 살아 있고 최소한 한 발자국 다가선 당 대표가 된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그가 어떻게 처신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쥐를 잡던 개를 잡던 밥을 짓던 죽을 쑤던 모두 자신의 책임이다.
봉하도 찾아가 노무현 대통령 묘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눈물도 보였나. “내가 정치적 입장을 달리했을 때 국가 원수였던 노무현 대통령께 인간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결례를 범했다. 진심으로 사죄한다.”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는 자신의 발언을 사과한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대통령님의 뜻을 받들어 정권교체 이루겠습니다.”라고 맹세도 했다. 손학규는 사과할 일이 많다. “(국민회의는) 원초적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당”(1996년 1월 16일) “행동하는 흑심인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흑색선전은 이미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1997년 1월 20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흑심(黑心)’으로 매도됐다. 양심은 흑심이 된 것이다. 당이 다르고 노선이 다르던 한나라당 손학규의 발언을 일일이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리할 것은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는 것이 발길을 가볍게 할 것이다. 정치는 현실이라고 한다. 일찍이 정치학을 강의한 손학규가 왜 그것을 모르겠는가. 그가 ‘경포대’란 호칭을 진상한 노무현에게 사과를 한 것도 정치가 현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뿌리를 내려야 할 민주당에는 밉더라도 손을 함께 잡고 갈 노무현 정치신념의 공유자들이 많다. 이들은 손학규에게 구걸하지 않는다. 일찍이 손학규에게 기대를 건 사람들도 아니다. 그들은 손학규의 노선 정리가 끝나고 됐다 싶으면 사심 없이 도울 것이다. 한의 정치를 하지 말라고 공자님 말씀처럼 말들은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부엉이 바위 투신을 절치부심하지 않는 노무현 지지자들이 어디 있으랴. 그 밖에 정치적 노선이야 어떻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국민들에게 깊은 슬픔을 주었고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고 믿는다. 더구나 잘 살게 해 준다는 한 마디에 넘어가 MB에게 표를 찍어 준 국민들의 후회가 지금 이 땅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믿는다. 손학규도 그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 대표의 막강한 권한 중의 하나가 인사권이다. 인사는 만사라고 하지 않던가. 그가 처음 단행한 인사가 지명직 최고위원이었다. 모두들 주시했다. 정치판에서 밥술 좀 먹은 사람들은 눈치가 칼이다. 설왕설래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딴 사람이 김정길 전 의원이다. 구색을 갖추었다고 생각들 했다. 우선 6·2선거에서 45%의 득표를 했다. 부산에서 45%라니 그게 어딘가. 노무현보다도 더 많은 득표다. 김정길은 노무현과 시종일관 정치를 함께해 왔다. 망국적 3당 합당을 한 김영삼과 그를 따라간 부류들과는 다르게 시종일관 지역타파를 위해 노력했다. 김정길 하면 노무현이 함께 생각난다. 소신파요. 정의파 투사다. 뚜껑을 열었다. 김영춘이었다. 아니 그게 누구야.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어! 이게 뭐지. 잠시 후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된 거로군. 손학규는 김영춘이 <제2의 노무현>이라고 입에 침이 말랐다. 뒤를 잇는 대변인의 말도 최상이다. “6.2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심, 즉 세대교체 흐름을 강화할 인물이다. 10.3 전당대회에서 드러난 당심, 즉 전국정당화를 위한 인물이다. 범야권 통합을 구현해 나갈 적임자로 판단된다.” 차라리 아무 말이나 말지. 제2의 노무현이라니. 누구 약 올릴 일 있는가. 김영춘은 부산 출신의 ‘486’ 정치인이다. 고대 총 학생회장 출신인 김영춘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라 정치에 입문 비서로 출발했다. 그는 대선에서 민주당과 상관이 없었다. 2002년 대선 때는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2030 위원회’ 총괄본부장, 2007년 때는 문국현의 선대본부장이었다. 오해 말라. 지금 그의 이력을 점검하는 것이다. 취직할 때 이력서 검토하지 않는가. 국민이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 16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일명 ‘독수리 5형제(이부영 김부겸 김영춘 안영근 이우재)’와 함께 열린우리당으로 왔다. 그는 한나라당에서 잔뼈가 굵었고 한나라당 출신 손학규 대표에 의해 최고위원 지명을 받았다. 대단하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어느 인간은 별다르냐. 모두가 그놈이 그놈이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별다른 놈이 필요한 것이다. 즉 별다른 놈이라는 의미는 설사 과거가 어쨌든 오늘의 행동이 별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김영춘이 손학규의 최고위원 지명을 사양한다면서 평당원으로라도 당을 위해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밝힌다든지 손학규가 지명을 철회하고 생각이 좀 부족했다고 진솔하게 말한다면 여기서 덕을 보는 사람은 누굴까. 그 진심이 국민을 감동시키면 정치는 한 걸음 발전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손학규는 당내 기반이 부족하다. 차제에 김영춘을 한 편으로 만들어 486이라는 세력과 함께 손을 잡고 김영춘이 부산출신임을 감안해 영남지지 세력과 힘을 모은다. 또한, 이낙연을 사무총장으로 호남을 껴안고 지역 안배도 적절히 구사한다. 이렇게 지지 세력을 넓혀가면 앞으로의 당내 장악력은 물론이고 2012년 대선후보는 물론이고 본선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옳든 그르든.
그러나 정치가 그렇게 만만한가. 적들은 자신의 상투 꼭대기에 앉아 있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한국 정치판에서 빤한 수로는 어림없다. 그럼 무슨 방법이 있는가. 신뢰다. 바로 정도다.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이다. 아끼는 속담에 이런 것이 있다. ‘길이 안 보이면 큰길로 가라.’ 바로 정도를 걸으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봉하 묘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고 손학규를 믿는가. 그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가. 신뢰를 쌓아야 한다. 신뢰가 바로 상식이다. 김정길을 최고위원으로 지명하는 것이 상식인데 기회를 아깝게도 잃었다. 기회란 자주 오지 않는다. 자신의 그릇 크기만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한나라당은 손학규가 당 대표가 되자 겁먹은 듯 엄살을 떤다. 말짱 쇼다. 한나라당은 조금도 손학규를 겁 내지 않는다. 민주당과 손학규의 단점과 약점을 너무 잘 안다. 우선 정동영이 손학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노란 싹수다. 정동영은 썩어도 준치다. 잘 되게 할 수는 없어도 못 되게는 할 수 있다. 국민은 손학규가 잘못되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잘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자기 욕심만 앞에 내세우면 돕고 싶다가도 돌아선다. 야당의 힘을 모으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문성근의 ‘국민의 명령, 백만송이 민란’ 현장도 방문해서 격려를 해 보라. 손해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내 반발은 잠재워라. 권위가 생긴다. 겁내지 않는 당 대표는 별 쓸모가 없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이 하는 정치보다야 누가 한들 더 못하겠는가. 상식대로만 하면 지금보다는 열 배 낫다.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정치가 지금이 아닌가. 아침에 인터넷 들어가기 전에 혈압약부터 먹어야 하는 오늘의 정치가 아닌가. 온통 불신의 도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손학규는 가슴 아프겠지만 잘못된 인사를 철회하고 다시 하도록 해야 한다. 잘못은 빨리 인정하고 시정하는 것이 좋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하지 않던가. 이럴 때 보여주는 것이 ‘살신성인’이다. 국민들은 ‘살신성인’을 보고 싶어 한다.
2010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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