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영의 ‘페르시아 문화유적 답사기’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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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 김제영 / 2010-10-31)
시장의 상품, 관광명소의 기념품 등에는 그 나라 국민의 이미지가 담겨져 있기 마련이다. 관습적 체취, 전통의 숨결, 역사와 문화의 정서 등…
가게마다 잔뜩 쌓아놓고 진열해 놓은 진기한 물품들, 메소포타미아에서 연유된 토기, 페르시아 자기와 유리제품, 금·은제 세공품, 목제 가공품 등 그중에서 당초문양이 그려진 집기들이 꽤 눈에 띈다. 색깔은 물론 이란 민족이 숭상하는 블루계통이다. 이란의 미술은 문양미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정도로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 고안되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에게 인식된 서양화의 개념으로 이란의 미술에 접근하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다. 이란미술의 이해는 독자적인 예술 장르의 미술이라기보다는 생활 속에 용해된 이슬람 문화를 터득하는 데서부터 개안이 되어야 한다.
생명은 알라신만이 부여할 수 있다. 이슬람의 근본사상이다. 그래서 화가는 인간, 동물, 생물체를 그려서는 안 된다. 생명을 갖고는 있지만 풀이나 나무는 상관이 없다. 돌, 산, 생산품 등 생명이 없는 것만이 회화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단 전시회와 같이 많은 사람의 감상용이 아니고 삽화나 공예품의 장식용으로 사람이나 동물이 그려질 경우 생동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살아있는 것처럼 묘사한다는 것은 알라신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입체감과 볼륨을 주어야 살아서 움직이듯…” 이런 식으로 미술을 지도했다간 이슬람의 학생들에게서 배척을 당할지도 모른다(요즈음에는 변화가 오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들의 우상숭배 금지와 유일신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 신앙이나 다를 바 없다. 다만 이슬람에서는 알라신을 여하한 형상으로도 표현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슬람 사원에는 예배를 받는, 즉 절에 가면 불상이 있고 교회에 가면 예수나 마리아 십자가 등이 있듯, 그러한 대상의 조상(彫像)이나 알라신을 상징하는 마크 한 개, 페넌트(Pennant) 한 장 걸려 있지 않다. 이슬람의 시조(始祖)인 모하메드(Mohammad)에 대한 개인 예배조차 금하고 있다. 예언자이고 사도일 뿐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얼굴이 ‘예언서’ 사본(寫本) 속에 묘사되어 있는 것도 있기는 하나 그것은 예배나 포교를 위한 회화가 아니고 문학서나 역사기록용 삽화란다.
개개의 점포를 기웃거리고 복도를 나와서는 아치형 천장을 올려다보느라고 사람들 발걸음을 막고 있었으니 영락없는 촌닭 관청 나들이다.
이란의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이곳 전통시장(Bazaar)은 12세기 초에 다일라미테(Daylamite) 왕조와 셀쥬크(Seljuqs) 출신 아바스(아랍어 : لعبّاسيّون) 왕조에 의해 정착되지 않았을까 생각되어진다. 쉬라즈(Shiraz)는 장사꾼들이 동서양을 오고 가는 길목으로 그들이 묵을 수 있는 숙박업소가 발달했을 것이고 장사꾼들이 모이게 되니 물물교환이 성행하게 되었을 것이다. 바자(Bazaar)는 그러니까 대상(隊商, Caravan)들의 여인숙(Lodge)에서 대상들의 휴식처로 세계 교역의 중심지로 전개되었고, 페르시아 상업을 대표하는 오늘의 고전적인 이란의 시장으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아바스는 쉬라즈 요새 내의 오래된 모스크를 보수 확장하여 아주 근사한 오늘의 Bazaar의 틀을 잡아주었다.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예를 찾을 수 없는 이란의 특허적 자산이다.
기원전 마케도니아의 광적 사나이(알렉산더)의 침공으로 시작하여 아랍군, 몽골군의 침략을 받았고 그것에 대적하기 위하여 군 사령본부의 기지였고 방어기지로 성벽과 8개의 게이트로 축조된 도시련만 전쟁의 잔해나 무기의 냄새는 오직 페르세폴리스에서 일뿐 민족시인 하페즈와 사디의 향기가 도시에 가득 고여서인지 쉬라즈는 과연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문화 유산의 보고답게 오월의 목련화 같은 품위가 은은히 잠겨 있었다. 쉬라즈에서 이스파한(Esfahan)으로 출발하여 호텔(메모가 된 일정표를 분실하여 호텔 이름을 적지 못함)투숙 5일째의 답사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미나르존반(흔들리는 탑), 잔뜩 궁금증을 품고 당도했으나 별 감명을 받지 못했다. 까무잡잡한 소년이 탑으로 올라가 온몸으로 기둥을 끌어안고 흔든다. 흔들리기는 하는데 그게 하나도 신기하지가 않다. 건물이 헐고 흙이 떨어져서 버티지를 못하고 사람이 흔드는 대로 따라서 움직이는 게 아닐까. 관광객에게 보이기 위해 하루에도 수없이 흔들어도 붕괴하지 않는 것을 보면 과학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는 있는 모양인데 어쩐지 살점이 떨어지고 뼈대가 드러난 부분이 안쓰러워진다. 종교 지도자 아울 밥똘의 가족묘지로 13세기에 지어졌단다. 건물 상층부 위에 구멍을 내놓았단다. 비가 오지 않는 고장이라 비가 들어 올 염려는 없으나 비가 온다 해도 실내의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 비를 막아주고 바람과 모래도 스치고 지나간단다. 윈드탑(Wind tower)을 흔들리는 탑으로 해석했으니 탑은 인위의 가공 없이 흔들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시큰둥하게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소년의 짓궂은 괴롭힘에도 끄떡없이 아직 21세기 관광객을 맞고 있는 700살 수명의 비밀은 무엇일까.
이스파한은 물의 도시요 교각의 도시이다. 이스파한은 또한 사파비 왕조(Safavid Dynasty, 1501-1736)의 샤 압바스(Shar Albbas) 1세가 건설한 실로 불후의 명작이다. 압바스는 군사적 지략이 뛰어났고 외교적 수완도 능란했다. 무시로 집적거리는 터키족과 우즈벡족을 평정하고 영국과의 외교도 원만하게 체결, 페르시아군의 군력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풍부한 예술적 감성과 건축에 대한 지식 안목은 이스파한이라는 이 도시에 이맘모스크를 탄생시켰고 세계의 절반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맘광장, 체헤루스톤, 그리고 완크교회를 허용,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주었다. 강에는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답고 낭만적인 다리를 건설해 놓았다. 페르시아에 개화한 르네상스의 전성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샤 압바스의 이맘모스크에 들어가 보겠다. 모스크 내부의 위용과 장엄한 황금의 빛깔에 압도되어 숨이 멎는 듯 거대한 돔의 천장을 올려다본다. 초인적인 힘이 작용하지 않고서야 그 옛날에 무슨 공법으로 360°의 원을 기둥 하나 받치지 않고 저렇게 정교하게 대성전의 엄숙과 신비를 연출해 낼 수 있었을까. 황홀경에 도취되어 까마득한 우주를 느끼듯 그렇게 서 있었다. 모스크 천장 높이는 52미터이고 천장은 이중구조란다. 17세기 건축양식으로 돔 꼭대기에 불을 밝히면 대상들의 낙타가 찾아와 경배를 했다고 안내자가 자랑스럽게 목청을 돋운다. 안내자가 이동을 하며 건물 내에서 발생하는 소리의 울림을 들어 보란다. 이쪽에서 손뼉을 치고 건너편 건물에 가서 들어 보란다. 그것은 이슬람 건축의 공통된 기법이다. 사원에서 거행하는 예배의 울림이 이슬람 전 시가지에 울리는 이치일 것이다.
과연 사원 내부에는 종이 한 장 붙어 있지 않다. “알라신은 무형, 즉 형체가 없는 분입니다. 인간이 제멋대로 인간의 형상으로 알라 신의 모습을 빚어서는 아니 되지요.” 코란에 명시된 이슬람의 기본 상식이다. 형체가 없다는 알라신의 존재… 어쩌면 가장 합리적이고 무신론적 사고(思考)로 하여 이슬람은 불멸의 종교로 아랍민족의 생활 속에 깊이 침투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벽은 주로 블루 일색의 타일에 만초(蔓草) 문양, 화만초(花蔓草 ) 문양, 조유(組維) 문양으로 가득 채워졌고, 전면 일부에 아자(亞字)형 문양이 흑백 타일로 세공되어 있다. 중국의 한문 문자 버금 아(亞)는 이슬람 사원의 벽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우리의 안내자 이정자 양이 귀띔을 해준다. 사파비아 왕조 때부터 빨간색 사용을 금지시켰다고 안다. 빨간색은 싸움, 피, 희생, 살인 등 잔인의 표상이기 때문이란다. 적(赤)색을 기휘하여 국가의 명령으로 적색 사용을 금지시킨 샤 압바스… 인간의 이중성과 권력 지배욕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이스파한에 화려하게 만개한 압바스 왕의 수려한 예술작품들과 업적을 생각할수록 500여 년 전 압바스 왕이 저지른 비극이 오늘 현재의 일인 양 가슴을 찍어 누른다. 그는 그의 권좌를 놓치지 않으려고 친아버지와 친 두 형제를 실명케 하여 투옥하였고 친자식을 처형하였고 또 한 명의 아들의 눈도 뽑아 버렸다. 다음은 여인 모스크다. 싸파비드 태조가 사망하면서 그의 후궁들의 기도소로 지어준 모스크이다. 출입구는 메카를 향해 있고, 통로와 지붕뿐 미나래(빛의 탑)가 없다. 벽은 아라베스크 문양의 블루타일과 노랑, 흰, 검정의 4색만이 허용되어 있다. 다음 행선지는 씨올쎄풀이다. 다리의 33개 아치가 일렬횡대로 석양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생명의 강 자얀데… 다리 밑에는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작은 운하 쥬이티하우스가 있단다. 테라스가 있는 이중다리… 다리 한쪽 파이프에서는 직립형 분수가 뿜어내는 물보라가 환상적으로 물의 도시 이스파한을 보랏빛으로 적셔주고 있다. 33개의 아치형 다리와 테라스가 있는 이중 다리는 도시의 산업적 기능과 도시민의 미적 정서를 고양케 하는 실로 이스파한의 심장이요 얼굴이다. 우리 일행은 33개의 교각을 배경으로, 그리고 이중 교각에서도 사진을 찍고 다리 난간 입구 사자상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33개 교각의 중간 위치에 찻집이 있다. 우~ 몰려 들어간다. 강을 바라보고 이란 고유의 차 맛을 음미하며 멋을 즐길 생각에 모두들 들떠 있다. 이곳 역시 쉬라즈의 옥외 찻집과 대동소이하다. 실내와 정원의 차이뿐이다. 벌써 창가로 가 그럴듯하게 물담배를 빨며 여수를 달래기라도 하듯 배우 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다. 벽, 천장, 심지어 주방까지 바늘 한 개 꼽을 틈도 남기지 않고 이란의 오만가지 토속품으로 장식된 찻집의 분위기는 흡사 동화 속의 궁전이다. 이곳의 찻잔도,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실 수 있는 후한 인심도 쉬라즈의 찻집과 비슷하다. 문학평론가 윤병로 선생 부인이 지갑을 연다. 나오면서 얼마냐고 물으니 “아주 싸요” 한다. 강에는 노을이 지고 도시에는 알라신을 경배하는 이슬람들의 순백의 기도 소리가 아스라이 번지고 있었다.
김제영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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