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배와 축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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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12-13) 소크라테스가 최후로 한 말이다. 그는 독배를 마신다. 역사는 소크라테스를 어떻게 평가했는가.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는 축배의 노래가 나온다. 더없이 상쾌한 기분 좋은 노래다. 독배를 들고 죽기보다 평생을 축배를 들며 살다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스스로 독배를 마신다. 죽을지도 모르고 독배를 축배처럼 든다. 요즘 문득 드는 생각이다. 예산의 액수는 국민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의미 있는 것은 예산안이 4대강을 위한 것이며 형님 예산을 구겨 넣은 것이며 ‘한식의 세계화’에 거액을 쓰는 것이며 우리 어린 새끼들 예방주사 값을 없앤 것이며 박희태와 송광호와 이주영이 지역구에 생색낼 예산을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실세들이 제 배를 채웠다는 사실이다. 金樽美酒 千人血 (금준미주 천인혈) 燭淚落時 民淚落 (촉누낙시 민누낙) 高聲歌處 怨聲高 (고성가처 원성고)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시다. 탐관오리 변학도의 잔치에서 읊은 이 시의 의미를 모른다면 한나라당 의원이다. 한마디 더 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키고 난 다음에 높이 든 축배의 잔 속에는 국민의 혈세 309조 567억 원이 녹아 있다. 왜 혈세라고 하는지 알 것이다. 여야가 합의했으면서도 날치기로 사라진 예산은 보육시설 미·이용 아동양육 지원금 2천743억 원. 그리고 영 유아 필수 예방접종 확대를 위한 국가예방접종확대실시 보조금 338억 원이다. 3살 미만의 아기들이 예방주사 맞는데 돈 보태주는 걸 싹둑 잘라먹었다. 보육돌봄 서비스사업 578억 원. 산모·신생아 도우미사업 310억 원, 구강건강관리사업 60억 원, 생계급여 323억 원, 장애가족지원 12억 원 등도 사라졌다. 모두 4천677억 원이다. 어디로 갔나. 이 칼럼 읽으면 다 알게 된다. 잠깐 짚고 넘어가자.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라는 원희룡의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들어보면 ‘결식아동 급식’은 국고지원 없이도 충분하단다. ‘보건소에선 영유아 예방접종 무료’로 해 주니까 별문제 없단다. 그럼 왜 애초에 예산을 편성했는가. 똑똑하다는 인간도 한나라당에 있으면 반드시 망가진다. 독한 세균이다. 모정을 무시한 한나라당의 지각없는 작태는 그들이 마실 독배 속에 녹아 남을 것이다. 모정을 팽개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는 자식 손자들도 없는가. 아니 돈이 많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역시 부자당이라 다르다는 욕먹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증거다. ‘한식의 세계화’도 좋다. 국위선양이라니까. 이번 예산안에 이명박 대통령 부인이 주도한다는 ‘한식 세계화 예산’으로 242억 5000만 원을 통과시켰다. 굶는 아이들, 애들 예방접종비. 장애가족지원비 등을 삭감하고 대학생 등록금 장학금 관련예산도 삭감했다. ‘한식 세계화’ 홍보에 쏟아 붓는 한나라당의 몰상식과 부도덕을 국민은 어떻게 이해할지 난감하다.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형님 예산’으로 불리는 이상득 관련 예산 증액은 충청도 전체 예산 증액 5억 원의 268배에 달한다. 한나라당이 날치기 통과시킨 예산안이 과연 국민을 위한 예산안 심사였는지 국민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지금은 비록 두려워 말을 못해도 의문은 독배 속에 녹아 남아 있을 것이다. 언론분석은 ‘형님 예산’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1조 원이 넘는다고 했다. 천문학적 국민 혈세가 이명박 대통령 형제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 그냥 아니라고 한마디로 잡아 땔 것인가. ▲ 2011년도 ‘형님 예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인 고흥길은 거대 언론사 편집국장을 지낸 상식인이라고 평가를 받았다. 그가 말했다. 템플스테이와 관련해 ‘불교계의 고승들이 20억을 가지고 역정을 내겠느냐고. 이것이 돈의 문제인가. 개신교가 불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증오 때문이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 봉헌에서부터 봉은사 명진 스님에 대한 안상수의 추방발언 등등 꼽으라면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불교는 이 나라 문화의 어머니다. 사찰(민간인 사찰이 아님)은 문화유산의 보고다. 여기서 우리 문화를 알고 배우자는 것이다. 고흥길의 발언은 역시 한나라당 식 사고이며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언제인가는 독배를 들고 후회할 것이다. 고흥길이 사표를 냈다고 한다. 사표만 내면 끝인가. 손쉬운 해결책이다. “객관적인 사실마저 왜곡하면 결국 정치권 모두가 공멸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4대강 사업이 대운하 사업이고 4대강 때문에 서민복지 예산이 대폭 축소됐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께 거듭 말씀 드린다.” 국민이 믿을까. 고흥길의 말은 사실이다. 솔직한 고백이다.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빼고는 모두 맞는 말이다.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주머니를 짜서 낸 혈세 중에 얼마나 많은 돈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 빠져나가듯 소리 없이 사라지는지 잘 안다. 국민은 가슴이 아프다. 예산은 한나라당의 돈이 아니다. 국민의 돈이다. 왜 맘대로 요리하는가. 미꾸라지 한 마리가 연못을 흐린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별 같지 않은 별들이 별들의 아름다운 빛을 흐리게 했다. 천안함부터 연평도 사태까지 군이 보여 준 모습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국민이 군에 실망하면 어찌 되는가. 아득하다. 포병장교로 육군중장 출신인 황진하(예비역 육군중장)의 보온병 포탄 쇼는 국민을 웃기기 위한 개그라고 웃어버린다 해도 북한의 연평도 공격 때 목숨을 잃은 해병 2명을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파편에 맞았거나 휴가에서 복귀하던 중에 죽은 것이기 때문에 ‘전사’가 아니라고 한 발언에 대해서는 3성 장군의 양식을 의심한다. 이 정도인가. 사람으로 이런 말 하면 못쓴다. 예산안 날치기 통과 때 혁혁한 무공을 떨친 김성회 역시 대령출신의 무장이다. 모두 명예를 생명으로 여기는 육사 출신이다.
무엇이 진실인가. “연평도 포격 대처 과정에서 말 바꾸기로 혼선을 일으킨 곳은 국방부가 아니라 청와대다.” “김태영 전 국방장관이 지난달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했던 발언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군의 핵심참모는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오전 국회 국방위에서의 한 증언을 상기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단호하지만, 확전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최초 지시가 있었다.” 이것이 당시 김태영 국방장관의 증언이었으나 논란이 일자 국방위 오후 답변에서는 대답이 달라졌다. “(이 대통령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말이 바뀌는 것은 신뢰와 직결된다. 정부와 군이 보여주는 신뢰의 추락은 앞으로 매우 비극적 상황을 예감케 해 준다. 정말 국민의 도움이 필요할 때 국민이 믿어 주지 않는다면 어쩔 것인가. 정말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거짓말하는 애들은 매로 다스리면 버릇을 고친다. 술과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한다. 정부의 거짓말에는 누가 매를 드는가. 언론이다. 어디서 웃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웃는가. 바로 언론이다. 기가 막힌 모양이다. 하긴 그럴 것이다. 매를 들 자격이 언론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데 무슨 매를 든단 말인가. KBS가 사과를 했다고 한다. 아니라고 부인을 할지도 모르지만 보도대로라면 부사장 조대현, 보도본부장 이정봉이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균형적 감각이 문제될 수 있는 보도가 된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동시에, 최영희 민주당 의원이 손가락이 부러지는 정도로 폭력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로 비춰지게 만든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했다. 조대현과 이정봉은 참여정부 당시에 반듯한 언론인으로 후배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속병을 앓고 있는 좋은 언론인들이 KBS라고 왜 없겠는가. 알고 있는 언론인들만 해도 부지기수다. 그들의 상심하는 모습이 늘 마음에 걸린다. 염병을 앓는다고 자위를 하자. 다만 새까만 후배한테 나가 달라는 충고는 듣지 않도록 하자. 김범수 <추적 60분 담당 PD>가 사장 김인규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저렇게 일생을 보내는 사장도 있구나 탄복을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다 함께 독배와 축배의 잔을 들고 있다. 민주당에는 축배를 들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다. 오늘(12월12일) 서울광장에 갔었다. 손학규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의원들의 결의가 대단했다. 누군가 옆에서 한마디 한다. 저게 며칠이나 갈지 두고 보자고.
그것이 바로 민주당을 보는 국민의 시선이다. 왜일까. 스스로 알 것이다. 민주당의 예산무효투쟁과 손학규 대표의 서울광장 100시간 농성. 14일부터 벌이는 전국투쟁. 왜 100시간 농성인가. 국민들은 얼마나 가는지 두고 보잔다. 중간에 흐지부지 적당히 중단해도 국민들은 놀라지 않는다.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적당히 하는 척 중단하면 그것 역시 독배다. 손학규 대표가 쉰 목소리로 호소한다. 민주당의 텐트 옆에 민노당의 비상천막도 있다. 정당과 시민단체의 공동투쟁이다. 제대로 좀 해 봐라. 어느 시민단체의 간부는 지금 사태가 민란이 일어날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12월 18일은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고 독재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각계각층 민중들이 총궐기에 나서는 날이다. 오늘부터 12월 18일까지 우리는 MB 심판과 이명박 정권 퇴진을 바라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비상시국농성에 돌입한다.” 한나라당은 누구를 보고 정치는 하는가. 국민이 주인이니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과연 그런가. 이번 예산 날치기가 국민을 보고 한 정치라고 생각할 국민이 있을까. 국민이 아닌 대통령을 보고 한 정치라고 믿을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의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 두려움이라고 믿을 것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에는 임기가 없다. 이미 상실해 버린 대통령의 신뢰다. 신뢰회복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 더 이상 국민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빌 뿐이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이제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해야 한다. 무엇이 진정한 민심인가를 정신 차리고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망이 있는가. 없다. 한나라당 원내 대표 김무성은 당당했다. “이번 국회 날치기 통과는 나라와 사회를 위한 정의로운 행동이었다.” (김무성) “오늘 국회를 통과한 서민행복 예산이 온 국민에게 첫눈보다 더 기쁜 소식으로 전해지길 기원한다.” (한나라당) 한나라당의 논평이다. 그렇게 생각하는가. 생각해라. 국민과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며 그래도 정치가 성공하는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김무성이 왜 사과를 했는가. 김무성이 박지원에게 사과를 했다. 김무성은 정의로운 행동에도 사과를 하는가. 이재오도 사과를 했다. 왜 사과를 하는가. 오른쪽 손가락을 치켜들며 뒤를 가리키던 이재오의 오만은 가히 혼자 보기 아까웠다.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해 누르면 죽이라는 뜻이다. 혹시 실수로 뒤를 가리킨 것은 아닌가. 한 때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던 이재오가 이제 반민주세력의 선두에서 곡예를 하고 있다니 슬프다. 인간이 저렇게까지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시청 앞 광장을 찾았던 이재오가 손학규를 보지도 못하고 쫓겨갔다. 개구리를 차디찬 냄비에 넣어 물의 온도를 서서히 높이면 뜨거운 줄도 모르고 죽는다고 한다. 무엇이 국민에 대한 잘못인지도 모르는 정치인들이 독배를 들 것이다. 아니 축배인 줄 알고 웃으며 들 것이다. 그들이 마시는 독배가 한 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마시는 독배다. 조금씩 독이 쌓여 국민의 심판을 받는 날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국민에게 준 고통이 모두 독배 속에 녹아 있다. 그날을 바로 심판의 날이라고 하는 것이다.
2010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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