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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순수한 남자 2010. 12. 16. 16:47

서울대학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번호 221113  글쓴이 사회디자인연구소  조회 646  누리 108 (108-0, 5:15:0)  등록일 2010-12-16 14:24
대문 5


서울대학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디자인연구소 / 권복규 / 2010-12-15)


한국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학벌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국립서울대학교가 있다. 최근 이 국립서울대학교는 ‘법인화’ 문제를 둘러싸고 소용돌이에 빠졌다. 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그리고 민주당이 반대하는 서울대학교 법인화(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는 “국립대학의 지위와 역할은 변하지 않은 채, 정부의 재정지원은 계속해서 받을 것이며”, 다만 “대학의 자율성과 책무성,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즉 국립대학법인으로 자산을 소유할 수 있고, 자율성을 가질 수 있지만 정부는 그에 대한 재정지원을 계속하겠다는 이야기이다. 서울대학교에 더욱 재정을 퍼부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으로 키우자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세계명문대학 서열에서 서울대가 여전히 뒤떨어진 상태에 있음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왜 특별 법인에 정부의 예산을 퍼부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제쳐놓더라도 서울대가 우리나라에 미쳤고, 현재에도 미치고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대다수가 눈을 감고 있다는 게 문제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저출산, 고령화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자녀에 대한 사교육비를 빼놓을 수 없다. 중상류층은 물론 서민 가계도 가계 수입의 1/3 이상을 자녀에 대한 교육비로 쓰게 된다. 그로 인해 어지간한 임금으로는 가계를 유지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해마다 물가인상과 더불어 노동계는 가열찬 임금인상 투쟁을 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사교육비를 이렇게 써야 하는 이유는, 안정적이고 높은 보수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한국 사회에서 역시 학벌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단지 일자리뿐 아니라 결혼 등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데 기인한다. 어느 부모도 자기 자녀에게 소위 “지잡대”를 나왔다는 딱지를 붙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사교육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증하고, 상승하는 부동산 가격과 더불어 젊은 층은 결혼과 자녀출산을 기피할 수밖에 없으며, 그 최종적인 결과는 국가 공동체의 몰락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이 학벌 서열 사회의 정점에는 국립서울대학교가 있다. 물론 서울대학교가 지난 60여 년간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우리 사회를 발전시킨 공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도대체 의대로부터 미대, 법대로부터 농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문 영역에서 절대 1위를 고수하고 있다는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이것은 예컨대 하버드와 예일은 기초학문과 법률이 강하고, 의학은 존스홉킨스가 강하고, 음악은 줄리어드가 강하다고 하는 미국의 모습과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자기 적성이나 흥미를 따지기보다는 다만 성적에 따라 가능하다면 무조건 서울대를 가고 보자는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 결과는 학문 발전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서울대의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이것은 서울대와 맞먹을 수 있는 대학이 하나 정도 더 있을 때 상호 경쟁을 통해서나 가능한 일이다. 전 학문 분야의 독점일 경우에는 그런 의지도, 동력도 발견하기 어렵다. 소위 명문사학이라고 하는 고려대와 연세대도 정면으로 붙었을 때 서울대와 경쟁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이들은 자기들끼리는 좋은 경쟁 관계를 유지하면서 학교를 발전시키고 있는 모델이지만, 국가가 뒤를 봐 주는 서울대학교와는 아예 경쟁이 되지 않는다.

서울대학교는 국립대학교로서 엄청난 특혜를 누린다. 마치 고려의 국자감이나 조선의 성균관과 같다. 관료의 대부분은 서울대 출신이며, 대기업 고위직도 상당수가 서울대 출신이고, 법조계 유력 지위의 절대다수는 서울대 출신이 차지하고 있으며, 대학교수들은 상당 부분 서울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해마다 엄청난 연구비를 정부로부터 독점하고 있으며, 단지 서울대 교수라는 이유로 학계에서 누리는 프리미엄도 절대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젊은 연구 자원들을 독식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서울대의 교육의 질이나 학문의 질이 해외 유수 대학과 경쟁할 만한가? 혹은 투입되고 있는 투자에 비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세심하게 따져본 사람이 없다. 서울대가 우수한 것은 유능한 교수와 교직원이 있기 때문인가? 오히려 우수한 학생들을 독점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다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서울대의 학부 교육은 다른 명문 사립대학이나 다른 국립대학들에 비해 결코 우수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학문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인 학문의 동종교배는 사실상 서울대가 그 근원이다.

나는 서울대가 정말 좋은 교육, 학술, 연구기관으로 성장하기 바라지만, ‘학벌’을 붙여주는 공장 노릇은 그만 했으면 좋겠다. 만약 서울대 (학부) 졸업이라는 딱지가 사라진다면, 그다음부터는 학문 영역 간의 공정 경쟁이 가능할 것이다.
 
경영학은 연세대, 법률은 고려대, 인문학은 성균관대와 이대, 미술은 홍익대와 국민대, 농학과 생명과학은 건국대 하는 식으로 대학마다 고유의 컬러와 장점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며, 학생들은 그야말로 대학 서열이 아닌 전공과 흥미를 찾아 가고 싶은 대학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양한 입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고, 지금까지의 학력고사나 수능시험과 같은 학생을 일렬로 줄 세우는 식의 교육은 불가능해질 것이고, 그에 따라 사교육 열풍도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전공 별로 학생을 뽑게 되면 그 학생의 교육적 이력과 해당 영역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지, 전교 몇% 안에 들었느냐, 수능시험 몇 점이냐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1세기에는 대학이 고유의 장점을 찾아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종합대학서열’과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지금도 세계 대학 서열에는 서울대보다 포항공대와 KAIST가 상위에 놓여 있는데 그 이유는 특화된 분야에 대한 전문화된 발전 전략을 썼기 때문이다. 누가 MIT가 하버드보다 못한 대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갈 수만 있다면 포항공대보다는 서울공대를 가는 편이 낫다. 비록 교육 수준과 실험실습 설비는 포항공대가 훨씬 낫다 해도. ‘학벌’과 ‘사회적 관계’의 늪에서 아무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진정한 교육개혁을 위해서는 서울대가 학부를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학부 교육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하는가? 고등교육과 전문지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21세기 지식중심사회에서 굳이 고교 졸업생 중에 자기 학부생을 뽑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대부분 적성과 흥미가 없어도, 단지 ‘서울대학교’라는 이유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그것도 전공 공부는 제쳐놓고 과반수가 각종 고시(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언론고시, 교사임용시험, 변리사 및 회계사 시험)에 매달려 있는 서울대 학부생들에게 왜 정부가 엄청난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지를 묻고 싶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서울대 졸업’이라는 딱지이지, 그곳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학문이 아니다. 서울대학교가 국가가 바라는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이 되려면, 대학원을 강화하면 되지 학부 교육에 역량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다른 대학에서도 잘할 수 있는 학부 교육을 마친 학생들을 뽑아서 최고의 대학원 교육을 시키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그래야 2차 고등교육(second high education)이 중요해지는 21세기 사회에서 국가가 국민의 세금인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정당성도 확보될 것 아닌가?

이미 서울대학교는 로스쿨을 가지고 있다. 굳이 법학부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실용적인 로스쿨에 덧붙여 학문 중심인 법학대학원을 유지하여도 좋을 것이다. 의대는 의학전문대학원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인문사회대는 굳이 학부생을 두어야 하는가? 한국학중앙연구원은 대학원 과정만 가지고 있어도 높은 수준의 학술적 업적을 남기고 있다. 경영대나 행정학과는 프랑스의 국립행정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음·미대는 이미 존재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기능이 중복되는 것은 아닌가? 공대와 자연대 교수들에게는 이미 학부 교육보다도 자신의 연구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대학원 교육이 더 중요하다. 학부를 없애고, 모든 대학원생이 거의 공짜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서울대는 놀랍게 발전할 것이다.

서울대학교의 학부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다음의 지지가 되기 어려운 주장이 있다.

첫째, 모든 학문의 건전한 발전(‘천대받는’ 인문학 포함)을 위해 가능성 있는 대학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나는 여기에 분명히 동의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 왜 굳이 꼭 학부가 필요한 것인지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두 번째, 학부가 없으면 그 학문은 사양길로 접어든다는 주장이다. 나는 서울대학교는 다른 국립대학들과 함께 ‘국립대학’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국립대학에 학부를 두면 될 것 아닌가? 그리고 가장 우수한 수준의 학술연구를 할 수 있다면 다른 국립대학 학부 졸업생들이 대학원으로 오면 될 것 아닌가? 지금도 역시 그렇게들 하고 있는데. 왜 자교 출신 학부생들에게 똑같은 교수가 엇비슷한 교육을 시키는 학문적 동종교배를 지속해야 하는가?

세 번째, 우리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좋은 학부 대학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는 가장 좋은 학부교육은 사실 소규모 칼리지들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보다는 진실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가 더 높이 평가되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가혹한 학벌사회의 문제가 없다. 외국 사람들이 ‘서울대학교’나왔다면 알아줄까? 참으로 우물 안 개구리다운 생각이다. 그렇게까지 학부 대학을 키우고 싶으면 국립대학교들끼리 경쟁을 붙여 한두 곳 정도 예산을 전폭 지원해서 키워볼 것을 권유한다. 포항공대가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인 대학으로 떠오른 데는 결국 파격적인 예산 지원이 큰 몫을 했으니까.

나는 법인화도 좋고, 국립대학에 대폭 예산을 투자하는 것도 좋다. 강바닥 파는 돈이면 우리나라 모든 국립대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암인 ‘학벌사회’와 ‘교육/입시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국립서울대학교는 더 이상 학부생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진보개혁세력이 차기 정권을 차지한다면 이 개혁에 명운을 걸어보았으면 좋겠다.

이제 정말 깨 놓고 이야기해보자. 서울대학교의 존재가 대한민국에 무엇인가를.

학부를 받지 않는 대가로 정말 전폭적인 예산지원을 하고, 서울대 교수들을 ‘(다른 교수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준다면 그들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학부 교육을 하지 않는 대신 콜레쥬 드 프랑스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심오한 강의를 EBS나 인터넷을 통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국립대학교의 교수의 사회적 책무에도 맞는 일이 아닐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애를 뽑아서 자신들의 성을 쌓고 서열을 유지하는 대신,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초적인 학부 강의를 하는 대신, 성숙한 젊은 인재들을 받아 관심 있는 학문 연구에 매진하는 편이 더욱 낫지 않을까? 학벌이라는 차원에서 서울대가 모든 분야를 독점하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깬다면, 그다음에는 대학들 간의 공정한 경쟁이 가능해질 것이고, 이는 우리 사회에 교육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서울대학교의 학부 폐지와 더불어 각 도의 국립대학에 대폭적인 예산지원을 해서 현재의 등록금을 반, 또는 그 이하로 줄이는 개혁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도 전체 재정의 규모에서 보아 그리 큰 비중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거대할 것이다. 즉 서울대학교 학부가 없다면, 서울대 대학원 진학에 국립대 프리미엄을 준다면, 등록금이 현재의 반값 이하라면 지역의 우수 인재는 굳이 서울의 ‘명문 사학’에 올라올 것 없이, 지역의 국립대학으로 진학하려 할 것이며, 그렇다면 서울과 지방의 격차 또한 장기적으로는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국립대학은 자신의 특성에 걸맞은 분야를 개척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학교 문제는 언제나 교육개혁의 논외였다. 그것은 아마도 서울대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 이 문제를 제기하면 ‘열등감’에서 그런다는 비난을 듣게 될까 두렵고,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은 자신이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가 정부재정(세금)의 대폭 지원을 받는 ‘국립대학 법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지금, 서울대학교의 존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폭넓은 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 나는 무상급식보다는 이 문제가 더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사실 급식비가 일반 가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사교육비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런데 서울대학교를 빼고, 한국 사회의 학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학벌 문제의 근원적 해결 없이는 입시 제도를 어떻게 바꿔도 사교육비 폭증과 공교육 붕괴는 해결하기 어렵다. 서울대를 졸업한 사람들, 그래서 이 사회에서 엄청난 유무형의 혜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책임감을 더욱 느껴야 한다. 나 또한 ‘후배’를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근대적, 혈연적 유산을 합리적 사유로 떨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퇴보하지 않고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권복규 / 이화여대 의대 교수


출처 : http://www.socialdesign.kr/news/articleView.html?idxno=6259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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