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기자들에게 드리는 고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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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1-01-28)
요즘 기자들의 심경이 매우 불편할 것입니다. 아니 불편함을 넘어 참담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기자정신을 가진 기자들이라면 더욱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여기서 참 기자라고 한 의미를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의미를 이해 못 하는 기자들은 저의 고언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충고를 해도 제대로 들릴 리가 없고 관심도 없을 것으로 믿기 때문에 포기한 것입니다.
요즘 몇 개 언론이 중상을 입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부산일보’와 ‘미디어오늘’ 그리고 ‘아시아투데이’가 많이 다쳤습니다. 부산일보는 청와대 1개월 출입금지, ‘미디어오늘’과 ‘아시아투데이’는 출입기자 등록취소가 결정 됐습니다. 출입금지나 등록취소가 얼마나 가혹한 조치인지 기자라면 누구나 잘 알 것입니다.
이들이 왜 누구에게 무슨 이유로 다쳤을까요. 그 이유를 구구하게 설명하는 것도 역시 구차합니다. 기자라면 누구나 다들 잘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참 마음이 아프죠. 기자가 아무리 무관의 제왕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해도 잘못을 저질렀으면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결코 초법적인 존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착각을 하는 기자들이 있어서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역시 기자라는 이름으로 관용이 베풀어지기도 합니다.
기자들이 오만과 자기도취에 빠지도록 만드는 것은 기자들 자신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국민들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 없이 언론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면 기자들에게 가해지는 국민들의 채찍 역시 기자들이 거부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언론이 저지르고 있는 폐해를 기자들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말 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국민도 잘 압니다. 역시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 이유는 언론이 가지는 긍정적 부분이 더 많고 언론이 없으면 그 사회는 빛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독재. 그리고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재갈에 물린 언론이 할 말을 못할 때 느끼던 답답한 고통을 잘 압니다. 기자들이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구속이 되고 해직이 되고 목숨을 잃어가며 투쟁을 했습니다.
언론의 자유가 꽃처럼 만발한 세상에서 가슴을 활짝 펴고 살 수 있기를 갈망하며 죽어간 언론인을 여러분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동아투위. 조선투위 그리고 그 많은 해직기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내부의 적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지만 비극은 항상 안에서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군부 독재나 정치권력들은 늘 언론을 지배하기를 원했습니다. 언론은 바로 그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고 국민을 세뇌시키는 가장 강력하고 유용한 도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론을 장악하려는 세력의 마수는 언론인에게 접근했고 그들은 기꺼이 하수인이 됐습니다. 독재자나 정치권력의 충직한 하수인이 바로 언론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중에 기자로 명성을 날리던 인물이 독재자나 권력의 시녀가 된 모습을 보면서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게 식었고 언론의 신뢰는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재 권력의 하수인으로 최 일선에서 눈부시게 활약한 것은 언론인이었습니다. 지나간 인물들을 일일이 거명하는 것이 고언의 본질이 아니기에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 하지 않아도 기자들은 잘 알 것입니다. 다만, 오늘의 시점에서도 언론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되는 언론인은 경우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이고 바로 잡아야 할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1944년 11월 9일 새벽. 나치협력 언론의 앞잡이였던 쉬아레즈는 총살형으로 언론인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쉬아레즈’는 프랑스 일간지 ‘오늘’의 정치부장이었습니다.
‘프랑스를 방어해 주는 나라는 독일뿐이다.’
‘영국과 드골이 폭격을 감행하면 나치군이 유대인과 공산주의자, 프랑스거주 미국인과 영국인을 인질로 잡아 대항하자’
1980년 5ㆍ18 광주민주화투쟁 당시 ‘저기 철조망 넘어 총을 든 폭도가 서성거리고 있다’고 쓴 조선일보 김대중 기자와 고스란히 오버랩되지 않습니까?
나치협력 언론인을 처형했던 드골은 시간이 흐른 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언론인은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에 첫 심판대에 올려 가차 없이 처단했다’
독재자들이 왜 언론을 장악하려 할까요. 언론의 힘을 알기 때문입니다. 언론을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언론은 저항해야 합니다. 양심을 버린 언론은 어느 시대 누구라도 다 같이 비난을 받아야 하고 역사에 기록이 되어야 하고 기록은 교훈으로 남아 후세에 전해져야 됩니다.
나폴레옹이 유배됐던 엘바 섬에서 탈출했을 때 프랑스 언론은 이렇게 썼습니다.
“악마, 소굴을 빠져나오다”
나폴레옹이 리옹을 지나 파리로 진격했습니다.
“폭도, 리옹을 지나다"
나폴레옹이 수도권에 진입했습니다.
"도둑, 수도권에서 목격되다"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했습니다.
“나폴레옹, 파리에 도착하시다"
나폴레옹은 파리에서 하룻밤 잤습니다.
“황제폐하님. 백성들과 함께 하룻밤을 주무셨다. 황제 폐하 만세."
이것이 당시 프랑스 기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의 한국언론은 국민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요. 방송의 경우 뉴스는 한 방송만 보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내용이 같기 때문이지요. 아마 기자들도 무척 창피할 것입니다.
KBS와 MBC에서 무더기로 징계를 당한 기자와 PD들은 그들 자신이 왜 징계를 당해야 하는지 잘 압니다. 양심대로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양심대로 행동하면 징계를 당하는 언론은 제대로 된 언론이 아닙니다.
견디기 힘든 굴욕을 참고 시키는 대로 기사를 쓰고 방송을 하는 기자들과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PD들은 참담합니다. 기자들은 존경받지 못합니다. 자랑스럽고 보람 있어야 할 직업이 이제는 드러내기 부끄러운 모습이 되었습니다.
사실보도는 언론의 생명입니다. 사실이 아니면 거짓이고 사실 보도를 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과 거짓을 구별할 능력이 없는가요. 근본적으로 언론인의 자질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양심적인 기자 PD들의 속이 끓고 있습니다. 이유는 다 알고 있습니다. 노무현 시절, 그토록 저항정신(?)이 투철했던 기자들이 지금은 얌전합니다. 탈진을 했나요. 체념을 했나요. 겁이 나서인가요. 배부른 돼지가 되어서인가요.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나무젓가락도 한 개씩은 쉽게 부러뜨립니다. 그러나 열 개씩 스무 개 씩은 못 부러뜨립니다.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이제 막장 언론에서 기자답게 사는 길은, 올 곧은 기자의 길을 가기 위해 싸우는 것이며 싸우기 위해 단결해야 합니다.
기자로 첫 발을 디뎠을 때 결심했던 올바른 기자의 길. 그 길을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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