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머니를 위한 마지막 진혼곡.

순수한 남자 2011. 2. 13. 12:49

어머니를 위한 마지막 진혼곡.
번호 232949  글쓴이 이기명 (kmlee36)  조회 2323  누리 576 (576-0, 32:72:0)  등록일 2011-2-12 10:58
대문 43


어머니를 위한 마지막 진혼곡
죽은 자여, 지구의 멸망 뒤 다시 태어나자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1-02-12)


어린 소녀가 새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어느 날 새가 갑자기 죽었다. 소녀는 너무나 슬펐다. 아버지가 겨우 달랬다. 소녀는 새를 상자에 담아 아버지와 함께 뒷산에 올라가 새를 묻었다. 새의 모이통과 꽃 한송이. 소녀는 이제 할머니가 됐지만 아직도 어릴 때 묻은 새를 잊지 못한다.

6·25 전쟁 때 마을 뒷산에는 중공군 앞산에는 유엔군이 대치하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 사이에 있는 마을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중공군이 후퇴하고 뒷산에는 중공군 전사자의 시체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주민도 많이 죽었다.

마을 주민들이 징발됐다. 중공군 시체를 묻으라는 것이다. 산 넘어 주민들도 징발됐다. 산등성이를 경계로 산 넘어 시체는 그쪽 주민들이 산 이쪽은 이쪽 주민들이 묻기로 했다. 사람들은 서로들 시체를 상대편 쪽으로 갖다가 버렸다. 그냥 아무렇게나 묻었다.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소 돼지처럼.

얼마가 지난 후 몸이 반쯤 드러난 시체가 많이 발견됐다. 아무렇게나 묻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누군가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을 것이다. 늙은 지금도 나이 어린 중공군의 시체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돼지를 기르던 축산농가에서 떨어진 야산에 파묻지 않은 새끼돼지들의 시신이 널려 뒹굴고 있는 모습이 보도됐다. 야생 들짐승들이 뜯어 먹은 피 묻은 뼈들이 보인다. 까치도 날아들었다. 이들 야생동물들은 도처에 돌아다니며 구제역을 옳길 것이다. 살처분이 무슨 소용이며 예방백신이 무슨 소용이랴.

아무리 급해도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살처분된 가축이 320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이제는 속수무책이다. 하늘의 처분만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뒤늦은 소리지만 안동에서 처음 구제역이 발견됐을 때 비상대책을 세웠다면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공기전염이 된다는 말도 있으니 순리를 모르는 인간에 대한 하늘의 응징인가. 우리 백성들이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졌단 말인가.

구제역 후유증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4조 원에서 5조 원이 들 것이라고 한다. 4대강 개발에 20조 원이 든다.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구제역은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나랏빚은 우리로서는 예상하기조차 힘들다. 정부는 괜찮다는 소리를 버릇처럼 되뇌지만 믿을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 달러 많다는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아랍에미리트 원전건설은 이익이 남지 않는대도 지어 주는가. 우리 군대까지 빌려 주면서 손해나는 장사를 한다면 맨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짓이다. 술 취했나.

구제역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의 문제며 삶의 문제다. 가축의 삶이 아니라 바로 국민의 삶이다. 우리의 생명이다. 한강 상류 매몰지를 조사하니 절반에서 침출수 유출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침출수가 유출되면 인근 하천으로 흘러들어 갈 가능성이 높아 한강 수계의 오염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천에서 불과 3미터 떨어진 곳에도 묻었다니 기가 막혀 입이 얼어붙는다.

한강 상류는 우리가 먹는 물의 식수원이다. 이제 우리가 먹어야 할 물의 실체를 생각하면 목으로 물이 넘어가겠는가. 관계 장관들의 자세는 느긋한가. 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대통령이 나서야 할 것 같다. 그저 장관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뿐이다. 대통령이 가죽점퍼 입지 말고 살처분 가축 매몰하는 공무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직접 삽을 들어 보라. 어디 환경부 장관 국토부 장관이 지금같이 멍청한 태도를 취할 수 있었겠는가.


국가의 최고 덕목은 도덕성이다

국가의 최고 덕목은 도덕성이다. 부도덕한 정부의 말은 어느 국민도 믿지 않는다. 국가의 도덕성은 어디서 오는가. 대통령에게서 나온다. 대한민국이 하늘처럼 존경하는 미국의 경우 공직후보자의 도덕성은 가혹하리만큼 엄중하게 따진다. 대통령 후보의 경우 교통사고 딱지 떼인 것도 문제가 된다.

교통사고 딱지는 고사하고 음주 뺑소니 사망사고를 냈어도 합의를 봤다는 이유로 기상청장에 임명된다. 대통령의 전과가 몇 개냐 하는 것은 심심치 않게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는 우리의 현실이다. ‘과거는 묻지 마세요’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있느냐다.

그래도 그렇다. 청문회에 등장하는 고관후보자들의 과거를 보면 애들 교육이 걱정된다. 재주도 좋다. 어떻게 그렇게 골라낸단 말인가.

4대강 개발로 자연은 만신창이가 된다. 파헤쳐지는 지하에서 문화재들이 발견된다. 불교계가 들고 일어난다. 문화재는 무엇인가. 우리의 정신유산이다. 문화가 밥 먹여주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과학비지니스벨트 유치로 국민이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동남권 공항을 두고도 사태가 심상치 않다.

전세난, 실업자, 물가, 연이어 터지는 철도사고가 어지럽다. 부도덕한 범죄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왜 이렇게 도덕을 외면하는 범죄가 창궐하는가. 그래서 국가의 도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가 지도자의 도덕적 인식수준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경북 영천 고경면의 한 매몰지에서 핏빛 침출수가 흘러나와 분뇨 차량으로 처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320만 마리의 구제역 살처분 가축의 시신이 전국 산야에 묻혔다. 전 국토가 가축 매몰장이다. 힘들고 고단해도 한번 잘 묻으면 후유증은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눈 가리고 아웅이다. 나중에 이 피해는 누가 입는가. 바로 자신의 자식들이다. 도덕성의 마비다. 이제 대한민국은 버려진 땅으로 변해간다.

금수강산이라고 자랑했던 조상들이 부끄럽다.

4대강으로 파괴되는 문화유산. 마애불상 문제는 문화유산의 죽음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생물은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받아야 할 대우가 있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의 국가경영능력이 한계를 들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머리를 짜 내도 칭찬할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자연경시다. 자연은 파괴되면 원상복구가 안 된다.

살아 있는 생명은 모두가 흙으로 돌아간다. 흙에서 태어난 생물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의 어머니다. 어머니를 더럽히는 인간이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는 어머니를 더럽히고 있다.

금수강산(錦繡江山)이 금수강산(禽獸江山)으로 변해간다. 죽어가는 우리의 금수강산, 아니 우리 어머니의 신음이 애처롭다. 어머니의 영혼을 위로할 진혼곡은 어디에 있는가.

 

2011년 02월 12일
이 기 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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