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먹다 남은 밥. 김치 좀 주세요.

순수한 남자 2011. 2. 10. 13:17

먹다 남은 밥. 김치 좀 주세요.
번호 232438  글쓴이 이기명 (kmlee36)  조회 2053  누리 494 (494-0, 25:65:0)  등록일 2011-2-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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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남은 밥, 김치 좀 주세요”
이 땅에는 죽는 것이 행복인가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1-02-10)


인간이 삶의 끈을 마지막 놓을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유서라도 남기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내 경험을 말한다.

사고를 당해 큰 수술을 했다. 마지막일지 모르는 수술이다. 아내의 눈빛에서 느꼈다. 수술대 위에 누웠다. 마취가 됐다. 불과 몇 초 사이. 그리고 긴 시간. 그것이 죽음이다.

마취가 될 순간까지 느낀 것은 내 긴 인생의 단축이었다. 한 장의 그림 속에 내 인생이 전부 나타났다. 그것이 전부였다. 내 경우에는 말이다.

며칠 동안 충격 속에 견뎠다. 내 책임도 아닌데 죄인이라는 자책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작가 최고은의 죽음. 질병과 굶주림. 아니 그냥 굶어 죽은 것이다. 전쟁판도 아닌데 굶어 죽은 것이다.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이것이 유서였다. 유서가 됐다. 이걸 써 놓고 문 두들기는 소리를 얼마나 목이 빠지게 기다렸을까. 애처롭다. 배는 고파 무엇이라도 먹을 수 있는데 먹을 것이라고는 없다. 모를 것이다. 배고픈 경험이 없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6·25전쟁 때였다. 15세 소년은 너무나 배가 고팠다. 보이는 것은 모두가 먹을 것으로 보였다. 먹는데 환장을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리다.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다. 장발장을 이해한다. 배고파 도둑질하는 것을 이해한다.

차라리 도둑질이라도 하지. 도둑질이라도 해서 살아야지. 왜 죽어! 나무라지만 그건 살아 있는 자의 사치다. 최고은은 굶어 죽었다.

이제 남의 핑계 좀 대자. 이 나라 영화판에 구조적 모순을 안다. 영화판에서 작가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 잘 안다. 작품료로 먹고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정부의 책임이다. 작품금고라도 만들어서 최소한 먹고살 수는 있게 해줘야 한다. 그게 복지를 떠들어 대는 정부의 할 일이다.

4대강의 22조 원을 퍼붓는 이명박 정부다. 유인촌은 배우출신의 실세 장관이었다. 영화계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작가와 탤런트들이 어떻게 먹고사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을 장치를 마련했어야 한다. 그건 시혜가 아니라 책임이자 의무다. 땅 파는 것만 안다는 대통령에게 문화를 가르쳐 줘야 했다.

우리나라 원로 시나리오 작가와 대화를 나눴다. 영화작가들 참으로 비참하다고 했다. 그런 사고가 앞으로 더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한류를 아무리 떠들어 대면 뭘 하는가. 한류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겨울연가’도 작가가 쓴 것이다. 박경철 씨가 트위터에에 남긴 말이 가슴을 친다.

<제2의 ‘최고은’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치열하게 도전하라’는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실패가 죽음이라면… 그 과정이 이렇게 고통스럽다면, 소수의 성공사례를 들어 도전을 말하는 것은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우리 세대가 후배들에게 또 그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조국’이 정말 이런 모습일 수는 없는데요….

국가사회가 개인의 행복을 보장할 수는 없겠죠. 또 그리하겠다는 말은 레토릭일거구요. 하지만 최소한 불행하지 않게 할 수는 있겠죠.

상대적 행복은 개인의 몫일 테지만, 절대적 불행은 공동체가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는 정말 게임의 룰을 바꿔야합니다.

더 아픈 건 냉소였죠. ‘가족도 없나?, 주변 사람 뭐했나?, 공장 가면 일자리 많다.’ 등등…. 물론 이해가 안 되는 분도 계시겠죠.

하지만 외롭게 꿈을 위해 분투하던 그에게 유일한 동력은 아마 목숨과도 같은 처절한 자존심이었겠죠. 아프네요. 많이….

정병국 문광부 장관은 속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제2의 최고은이 생기고 대한민국이 ‘예술인의 아사천국’이라는 오명을 쓰기 전에 말이다.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가 힘을 기울여 해결해야 할 일이다. 굶어 죽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건 국민에게 저지르는 범죄행위다. 국민이 정부에 대해서 밥 한 그릇 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는다. 정부는 최소한 국민이 굶어 죽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의 삶을 위해 노동부가 있고 문화를 위해 문광부가 있다. 작가는 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비록 가난하게 살더라도 자존심을 지키며 살기를 바란다. 최고은 작가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발버둥치던 것도 결국은 자존심이었다. 마지막 생명의 끈이 끊어지려는 때 자존심을 놓아버린 그의 마음을 생각하면 말을 잊는다. 작가의 종말이 이렇다면 너무나 참담하지 않은가.

한강 인도교 난간은 마지막 안전장치다. 고가 사다리차도 마지막 구조장치다. 최고은에게는 난간도 고가사다리도 없었다. 예쁜 이름의 최고은이 슬픈 이름으로 마지막 잡은 것은 남의 집 현관에 부쳐놓은 한 장의 편지였다.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2011년 02월 10
이 기 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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