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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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문성근의 명연설에 눈물을 흘리는 노무현이 왜 그때는 다소 퉁명스럽다는 인상을 주면서까지 문성근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을까.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외롭다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성근이 영화배우의 길을 걷겠다면서 정치를 거부했을 때, 정치인 노무현은, 누구는 정치를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느냐, 속으로 야속한 생각을 조금 하지 않았을까 싶다. 노무현이 여느 정치인과 달랐던 점은 정치를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잘 나가는 세무변호사였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이 사람대접을 못 받고 의롭지 못한 사람이 떵떵거리며 대대손손 호의호식하는 잘못된 역사의 부채를 후손에게 더이상 떠넘길 수 없다는 역사적 책임감 때문에 정치라는 형극의 길로 나섰다. 영화배우 문성근도 정치인 노무현이 정치를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치인 노무현이 정치라는 지옥의 길로 자진해서 들어섰다가 결국은 스스로 몸을 던지고 나서 사무치게 깨달았을 것이다. 문성근이 영화배우로 인정받고 있고 그렇게 영화배우가 하고 싶으면서도 거리로 나선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긴 하지만 문성근이 너무 힘들어서 영화를 하는 후배나 선배에게 같이 백만민란에 앞장서자고 했다가 난 배우로 한평생을 살겠다는 대답을 들었다면 속으로 욱 했을지 모른다. 아마 나라면 욱 했을 것이다. 나도 좋아서 이 짓 하는 게 아니란다, 그 말을 꿀꺽 삼키느라 애를 먹었을 것이다. 민주당이건 민주노동당이건 진보신당이건 학생운동에 젊음을 바치고 지금은 정치권에 몸담은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나와는 달리 그들은 젊음의 어느 시기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나 대신 해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문성근, 유시민 같은 사람들에게는 더욱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그럴 여건과 기회만 있었다면 더 잘 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고 가능성조차도 포기했다는 점에서는 더 큰 희생을 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세 사람은 세무변호사로서 영화배우로서 저술가로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고 굳이 흙탕물에 발을 들여놓지 않아도 적당히 좋은 소리만 적당히 가끔씩 내뱉어도 대접받으면서 살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경제적 불이익을 각오하고 역사라는 대의를 위해서 행복한 삶을 반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말년에 정치를 하지 말라고 한 것은 경제적으로 유능했던 사람이 경제적으로 무능한 취급을 당하고 주변에 손을 벌리면서 살아야 하는 현실에 대한 자괴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노무현을 따랐던 사람들은 그를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그의 희생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자기 삶을 희생하고 가족도 아닌데 대신 역사의 흙탕물에 뛰어들어준 동지에게 제대로 동지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더 느꼈을 것이다. 노무현만 당선되면 하고 싶은 영화를 실컷 하면서 살겠다고 생각하던 문성근에게도, 노무현만 퇴임하면 쓰고 싶은 글을 실컷 쓰면서 살겠다고 생각하던 유시민에게도, 노무현은 가족이라기보다는 뒤늦게 동지로 더 사무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거리로 나섰을 것이다. 노무현이 마음 편해하던 사람도 가족 같은 사람보다는 동지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오붓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아늑한 밀실을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뒤로 하고 야합과 배신과 저주가 횡행하는 광장으로 나서 원하지 않는 투사가 되어야 한다는 동병상련을 노무현과 문성근과 유시민은 느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성과 역사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동지 의식에는 지성과 역사가 있지만 가족 의식에는 지성과 역사가 없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에게는 지성과 역사가 없었지만 고등학교만 나온 노무현에게는 지성과 역사가 있었다. 동지를 가족으로 오인하는 순간 동지가 가족처럼 굴지 않으면 동지를 적으로 만들어버리기 쉽다. 노무현을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이 노무현이 동지로 여기던 사람을 짓밟는 희극이 그래서 벌어진다. 가족은 우연의 관계고 동지는 필연의 관계다. 동지가 가족이 되는 것은 역사의 퇴보다. 노무현의 길은 진보의 길이다. 노무현의 길은 동지의 길이다. 개곰 개곰님의 글 서론 부분은 원론적인 말씀이시라 언급지 않겠습니다만, 노무현 대통령님과 유시민을 연결시키시기 위해 중간에 문성근님을 넣어 징검다리로 삼으신 것은 썩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쿨하게 노무현 대통령님과 유시민님만 거론하시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마음으로 읽혀지는데 아니라면 죄송하고요. 아무튼 개곰님께서 현재의 상황을 보고 걱정을 담아 쓰신 글이라 읽는 분들에게 부담을 줄여주시기 위한 배려라 이해하기로 하고, 개곰님 글 후반부 결론으로 올리신 부분에 대하여 논해 보겠습니다.
1. 노무현이 마음 편해하던 사람도 가족 같은 사람보다는 동지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오붓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아늑한 밀실을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뒤로 하고 야합과 배신과 저주가 횡행하는 광장으로 나서 원하지 않는 투사가 되어야 한다는 동병상련을 노무현과 문성근과 유시민은 느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번 가정해 보겠습니다. 개곰님께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서 도와줄 사람이 누굴까요. 불의의 사고든 금전의 문제든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을 때 누가 먼저 달려올까요. 가족일까요. 동지일까요. 가족 같은 사람일까요. 동지 같은 사람일까요. 우리는 늘 전쟁을 치르며 삽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커뮤니티에서, 광장에서, 정치바닥에서 피 터지게 경쟁하고 싸우며 삽니다. 그 속에서 어제의 아군이 오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 아군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굳건히 믿었던 개곰님의 등에 칼을 꽂을 사람은 가족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을까요, 동지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을까요. 살다가 생을 마감할 때,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얼굴을 보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개곰님은 누구를 찾으시겠습니까. 가족을 찾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동지를 찾으시겠습니까? 가족 같은 사람을 찾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동지 같은 사람을 찾으시겠습니까. 그래도 ‘하늘이 내려준 인연’과 ‘땅에서 만들어진 인연’ 중 어느 것이 중요하게 여겨질까와 같은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개곰님께서 말씀하시는 ‘노무현이 마음 편해하던 사람도 가족 같은 사람보다는 동지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명제부터 오류를 안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문재인, 강금원, 안희정은 ‘가족 같은 사람’일까요? ‘동지 같은 사람’일까요? 둘 다 아닙니다. ‘가족 같은 동지’가 정답입니다. 그래서 개곰님의 명제는 틀렸습니다.
이승만에게 지성과 역사가 없었던 것은 그의 박사학위와 무관하며, 마찬가지로 노무현에게 지성과 역사가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만 졸업한 것과 무관합니다. 노무현에게 지성과 역사가 있었다고 하여 노무현과 동지 같은 사람들이 동일한 지성과 역사의식을 갖고 있을 것으로 비약하는 것도 무리이지만, 노무현과 가족 같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없다고 정의하는 것은 더욱 난감한 논리입니다. 그리고 동지처럼 구는 것과 가족처럼 구는 것의 이분법적 구분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같은 직장 내에서도 가족처럼 살가운 직원이 있고, 그냥 함께 호흡 맞춰 일하는 동지적 관계가 있고 늘 반목하는 적과 같은 존재가 있듯이 그 판단은 인간관계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쌓여나가는 것이지 어느 순간 오판하게 되는 경우라면 사람을 잘 몰랐을 경우이거나 판단력이 부족한 경우라 할 것입니다. 개곰님께서 무엇에 견주어 하신 말씀인지 모르지 않기에 그렇게 논리를 연결하신 배경을 이해는 하지만, 그 경우 동지와 가족으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가족적 동지'와 '업무적 동지'로 구분하였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보여주신 것은 ‘지성과 역사’라기보다는 ‘원칙과 상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간격이 유빠와 노빠의 차이라고 보고요.
그리고 동지가 가족이 되는 것이 왜 역사의 퇴보인가요. 동지가 가족이 되는 것은 역사의 진보입니다. 서로 동지관계였던 사람이 결혼해서 가족이 되면 그게 퇴보입니까. 진보죠. 동지가 ‘적’이 되는 것이 역사의 퇴보입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동지들이 적으로 변합니다. 정치바닥에 지천으로 깔린 것 멀리서 찾지 마시고 이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노무현의 길은 동지의 길이었다구요? 개곰님은 노무현의 동지입니까. 가족입니까. 굳이 선택하라면 동지라 하시겠지요. 우리의 동지 노무현의 길을 우리가 지켜주었습니까? 어떤 동지가 노무현의 길을 지켜주었습니까? 우리는 그분이 꿈꾸시던 ‘사람 사는 세상’ 조차도 ‘증오와 불신의 세상’으로 채워버렸으니 우리는 노무현의 동지였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노무현의 길이 ‘동지’의 길이었다구요? 노무현의 길은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율리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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