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끝나고 처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닷새가 흘렀군요. 차분하게 생각하고 정리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이 애쓰셨던 분들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이번 대선을 관통하며 정치포탈 서프라이즈의 대표로서 감당해야 할 역할과 그것을 부여해 주신 개혁네티즌의 집적화된 바램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을 이루기 위한 노력 그 모두에 있어서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는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이제, '지나온 시간'을 정리해보고 '걷고 있는 길'에 대해 조명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서프앙님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몇 편의 글을 통해 차분히 말씀드릴 터이니 관심 있게 보아주시고 깊은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Crete님께서 제기해 주신 '서프 정체성의 문제'를 포함하여 대선 기간 동안 서프에서 일어난 모든 것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셨던 부분이 있다면 한 점 빠뜨림 없이 소상하게 말씀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해심과 인내심을 갖고 보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반노정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선 결과에 대해 많은 분들이 글로 올려주셨고 다양한 분석이 이루어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에 공감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대부분의 견해에 전반적으로 공감합니다만, 특이할 만한 몇 가지에 대해 짚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언론이 꽹과리를 치고 심지어 통합신당 일부 떨거지들도 맞장구 치고 있는 '반노정서'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반노정서'는 그들이 설정한 전략이며 정확히 표현아면 '그들이 만든 반노프레임'입니다. 그것을 '정서'라는 말로 일반화를 시도한 것이지요. 그러면 '반이명박정서'는 없었을까요?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 승리를 위해 공격하기 좋은 타겟을 설정하고 집중 공략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통합신당 측에서는 '이명박의 BBK'를 타겟으로 삼았는데, 한나라당에서는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타겟으로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대선구도를 '이명박 vs 정동영'이 아니라 '이명박 vs 노무현'으로 끌고 갔던 것입니다.
이 부분 주목해야 하며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번 대선의 구도가 '이명박 vs 정동영'이 아니라 '이명박 vs 노무현'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노무현' 속에 그들이 공략하기 좋은 재료들을 색칠하여 담아 놓은 것, 그것이 말하자면 '반노프레임'인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16대 대선 때 이회창 후보의 '병역비리'로 몰락했습니다. '이회창 vs 노무현' 구도로 치러진 전투에서 '이회창(수구이미지+병역비리) vs 노무현(개혁이미지+노몽연합)' 구도와 노무현 후보의 진정성을 통해 얻어진 여러 조건들이 조합되면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어렵게 이긴 싸움이었습니다.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아이러니하게도 16대 때와 똑같은 상황을 맞게 됩니다. 그것은 이명박의 '총체적 비리 이미지'입니다. 위장전입(취업)-도곡동-다스-BBK로 이어지는 '비리 줄사탕'은 이회창 때의 병역비리와는 품질도 다르고 급(級)이 다른, 말하자면 총체적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것을 돌파하기 위한 전략이 '이명박 vs 노무현' 구도입니다.
2. 그들의 '반노 프레임'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 사람들
한나라당이 내세운 명분은 '정권교체'입니다. 나라를 막론하고 선거 이슈 중 으뜸이 바로 그 주제입니다. 미국에서도 'Change!'가 주메뉴고 우리 기억에도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가장 설득력있는 메시지였습니다. 그 메뉴에 양념을 적당히 치면 꽤 효과적인 전략이 되는 겁니다. 나라가 망했네, 경제가 파탄 났네 등등 말입니다.
통합신당이 내세운 명분은 '부패후보'입니다. 정확하게 이명박에 조준된 화살입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쪽 진영의 본진(노무현)을 향한 화살이었던 반면, 이쪽에서는 적장(이명박)의 막사에 겨누어진 화살이었습니다. (정작 이쪽의 장수인 정동영 쪽으로 겨냥된 화살이 적었던 것을 정동영 후보는 자신의 복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한나절 싸움으로 결판이 나는 대평원의 전투라면 전략과 머릿수의 싸움으로 결딴이 납니다. 그러나 장기전인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본진(本陣)의 능력이 관건입니다. 지형의 유불리뿐만 아니라 보급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본진에 속한 정예부대인 기마부대의 능력발휘에 따라 승패가 좌우됩니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이번 대선의 본진을 자임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이번 대선의 구도를 '이명박 vs 노무현' 구도로 설정하고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노무현은 본진으로 자리매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5년 동안 조중동 화살을 맞고도 끄떡없이 버텼던 본진입니다. 하지만, 많은 상처를 입은 본진입니다.
한나라당은 이곳을 집중 공략했으며 그들은 '반노 프레임'을 만들었고 그곳에 이쪽 장수들을 가두려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먹혔들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일은 이쪽 장수들 스스로 그 프레임을 열고 걸어 들어가 스스로 갇혔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장수들이 그길로 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마지막까지 외쳤던 것이고요.
3. 화살의 총량에서 졌습니다.
비 오듯이 쏟아지는 화살의 영상은 영화 '300'에서 실감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옛적엔 화살로 기선을 제압했듯이, 2차 대전에서는 상륙작전을 감행하기 전 함포사격과 공습폭격으로 쑥대밭을 만듭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쏟아져 날아다니는 무수한 말과 말의 공격이 그것입니다. 논리의 공격입니다. 압박의 전술입니다.
그들은 줄기차게 우리 본진만을 공격했습니다. '참여정부와 노무현'만을 공격했습니다. 모든 화살이 그쪽을 향해 날아들었습니다. 그것을 막아 주어야 할 본진 장수들(이해찬, 유시민, 한명숙, 신기남)은 본진을 지키는 사람 한 사람 남지않고 모두 평원으로 달려나갔다가 제일 앞줄에서 전사해 버립니다.
우리 서프앙은 본진을 지키는 전사들이었습니다. 그곳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만들어 낸 가치가 가장 우수한 무기임을 알기에 서프 전사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런데 억장이 무너지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적군에게 쏘아야 하는 화살들이 거꾸로 본진을 향해 날아오는 것입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날아오는 화살'이었고, 그에 대해서는 별도의 방비가 없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컸습니다. 그로 인한 사상자보다는 전투의 사기를 꺾는 것이 더 치명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연합군이라고 믿고 있었던 부족들(문국현, 이인제) 역시 툭하면 본진을 향해 화살을 날리곤 하니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진영 내부에서 우리 본진을 향해 화살을 날렸던 것, 이것이 패인의 본질입니다.
한편으로 그들은, 이명박 하나만 완벽하게 보호하면 승산 있는 싸움이었고, 필요할 때 검찰의 거대한 보호막이 방패막이 되어 날아드는 화살을 모두 막아주는 괴력을 발휘합니다.
4. 개를 내세워도 이겼다는 그들
외신에서 그랬다지요. 개를 내보내도 이기는 분위기라는 것. 언론은 그것을 '반노정서'로 잇대어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분석입니다. 이미 개가 나와도 이길 수밖에 없는 구도가 만들어져 있었다고 보는 것에서 옳습니다. 그 분석이 나오기 전에 이미 그 환경이 만들어져 버렸단 것이지요.
하루살이 전투가 아닌 장기전인데 본진을 지켜야 할 유능한 장수들이 모두 일선으로 달려나간 것, 그 장수들이 부당한 방법에 의해 수족이 잘린 것, 총사령관이 일찌감치 본진과 벽을 쌓고 본진을 향해 화살을 날린 것, 연합군이 통제권 내에 있기는 커녕 좌충우돌로 사고를 친 것… 그 상황을 보고 그 분석을 못 내면 바보이지요.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매우 고약할 질환인 지역구도에 바탕한 수구본성이 대상의 품질을 가리지 않는 맹목성을 갖고 있다는 것, 그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비난을 퍼붓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MB 지지율 총유권자 대비 30.5% 인가요? 그건 그들이 살인범을 내세웠어도 나왔을 수치 아닙니까 ?
보수의 총 합이 이명박(48.7%)+이회창(15.1%)을 더 해서 총 63.8%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이회창 후보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과반수 넘기는 정도(50%대 초반)에서 마무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회창 후보의 출마가 보수의 위기를 가져왔고 그것이 결집의 효과를 불러온 때문이지요.
5. 위기의 현실을 인식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 가치관이나 정체성에 따라 이 당 저 당 색깔을 구분을 할지 모르겠으나, 저들은 모두 동색(同色)으로 봅니다. 통합신당, 창조한국당, 민주당, 민노당 그 모두를 같은 계열 색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빨간 계열일 겁니다.
다시말해 이인제 후보가 노대통령을 비난하든, 문국현 후보가 참여정부를 비난하든 그들이 보기엔 '콩가루 훼밀리'로 인식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제대로 인식하는가의 문제는 바로 다음 전투에서 민주개혁진영의 승패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방향을 어디로 설정하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초래되거든요.
안타깝지만, 지난 대선에서 노출된 문제점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마찬가지 구도를 고집하거나 분화하는 길로 걷는다면 우리 정치사상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후가 더 심각하다는 뜻입니다.
대선에 패했다고 자괴감에 빠지셨습니까. 손 놓으셨습니까. 뉴스 보기를 끊으셨습니까. 신문 펼치기 것조차 싫으십니까?
앞으로 더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감당해야지요.
서프앙은 본진을 지켜 낼 '일당백의 전사'들입니다. 기마부대입니다. 그래서 기동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그 전사들이 적진을 공격하는 전략을 개발하고, 기동타격을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군으로부터 날아오는 화살로 인해 고유의 동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일입니다.
오늘 1편은 여기서 접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