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박사님

[황우석이야기15] 다치면서 깨달은 '난치병의 아픔'

순수한 남자 2008. 1. 31. 21:39
[황우석이야기15] 다치면서 깨달은 '난치병의 아픔'
번호 206974  글쓴이 노피디 (kbsnkj)  조회 135  누리 177 (177/0)  등록일 2008-1-31 18:10 대문 7 톡톡

 줄기세포 논란을 취재하며 만난 어느 난치병 환우는 "아픈 게 죄입니다"라고 절규했다.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 말은 인터뷰 대상인 '남'의 말일 뿐 결코 '나'의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깨달았다. 그게 바로 '나의 일'이고 '우리 일'이란 것을.  비록 그 분들이 겪는 고통의 몇 천분의 1도 안 될 작은 고통이었지만, 나는 이 작은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됐다. 

1%의 가능성.JPG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아침, 내 몸이 '부웅' 떴다.

이럴수가. 눈길 조심하라고 식구들에게 신신당부하던 나였는데, 그런 내가 눈길에 미끄러진 것이다. 그것도 매일 아침 오가던 아파트 계단에서 바깥쪽으로 첫 발을 내딛자마자.

황당함, 그 다음은 고통이었다. '퍼억'하며 왼쪽 허리가 계단 모서리에 부딪치는 순간 숨이 멎는 듯 했다. 옆에서 '저런 저런'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한 동안 일어나지 못했으니까.

그 다음은 공포였다. 다친 데가 점점 아파왔고, 의사가 만질 때마다 숨이 콱 막히며 호흡이 가파졌다. 별별 생각이 다 났다. 보건소에서 정형외과로, 한 밤 자고 또 다른 정형외과로, 결국 '뼈에는 이상없고 인대가 늘어났다'는 진단을 듣고 나서야 공포체험은 막을 내렸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2주일간의 병가가 끝났고 나는 다시 일터로 돌아왔다. 그런데 만일..그 2주일이 20년이 되었더라면 나와 내 가족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현실이다. 가슴아픈 현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가슴아픈 일들이 기가 막혀 말도 못한 채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척수손상 장애 원인의 88%는 한순간의 사고

순간의 황당한 사고가 평생의 아픔으로 이어진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척수장애인 432명에 대한 설문조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2007년 10월실시)를 보면 우선 답변자의 87.3%가 1급 장애등급이었다. 눈길을 끄는 항목은 척수손상의 원인이었는데, 뭔가 선천적으로 다르게 태어났을 거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외상'으로 인한 척수장애가 88.0%, '질병'이 11.7%, '알 수 없음'이 0.3%로 나타났다. 10명 중 9명 가까이가 황당한 사고로 인해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외상 원인 중 가장 많은 교통사고(55.3%)를 보자. 차를 타고 가다 다친 경우(67.4%)도 많지만 걸어가다 다친 경우(32.6%)도 상당했다. 보상 및 치료를 받지 못한 안타까운 경우(37.5%)도 많았다. 교통사고 다음이 높은 곳에서 떨어진 낙상사고(25.1%)였고 기타 군사사고 등(12.5%), 기타 스포츠 및 레포츠 사고(4.2%), 다이빙(2,6%), 폭행(1.9%)이 뒤를 이었다.

질병이라면 덜 억울할까? 아니다. 질병의 원인은 척수종양과 척수염, 선천성 기형 등 다양했고 그 중에는 '수술 후유증이나 의료사고' 처럼 병원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해야 하는 처지(질병 중 16.7%)도 있었다. 생각하기도 싫어 말을 안해 그렇지 집집마다 눈물고인 사연이 책 몇권 분량일 것이다.

 다치기 전 직업없음 '16.4%' ⇒ 다친 뒤 직업없음 '76.7%' 

진짜 문제는 다친 다음부터 벌어지기 시작한다. 나처럼 2주일짜리 초미니 환자도 다친 다음 가족에게 도움이 되지 못함에 답답했다. 진작에 예정되었던 도배와 장판교체를 하는 데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 채 누워있어야 했고, 책 한권이라도 옮기겠다고 먼지마시며 나섰다가 재채기 한 방에 옆구리가 와장창 내려앉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푹 쉬고 빨리 낫는게 도와주는 거다'라는 아내의 지친 얼굴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이래서 '아픈 게 죄'라는 말이 나오는가 절감했다. 

척수손상의 발생시기는 '만 20세 이상~만 30세 미만'(36.5%)이 가장 많았고 '만 30세 이상~만 40세 미만'(29.1%)이 다음이었다. 가족을 위해 한창 돈 벌고 일할 나이에 다치게 된 것이다. 다치기 전 16.4%에 불과하던 '무직'비율이 다친 다음 76.7%에 달했다. 가구 평균 월수입은 '100만원 미만'(32.9%)이 가장 많았고 아예 '없다'는 비율도 13.4%이다. 환자의 불행이 곧 가족의 경제적 위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 감옥에 갇힌 것이 어디 숫자뿐이겠는가

                   생각해보면 나도 감옥에 갇혀있는 것이다.  몸의 감옥에   나의 감옥에

                  가뭄에 등이 바싹바싹 타 들어가는 논처럼  예금통장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쌀독엔 쌀 몇 홉 뿐    밥상위에 놓인 푸성귀로 이 겨울을 날 순 없을까...(중략)"  

                            - 지체장애 시인 한상식의 '비상'중에서, 솟대문학 2007 여름호 통권66호

 의사의 도움이 4순위로 밀리는 냉엄한 현실 

의사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보자. 

설문조사에 응한 척수장애인들은 '척수손상을 입은 직후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의 순위'에 대해 1순위로 '배우자 또는 가족'을, 2순위로 '선배 척수장애인'을, 그리고 3순위로 '종교인'을 꼽았다. 그 다음이 '의사'였다.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위 역시 가족과 선배 척수장애인이 1,2순위였고 3순위가 의사였다. 

세상 모든 환자는 의사를 하느님처럼 믿고 기대려하고, 세상의 모든 의사는 환자를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의사가 도움 3,4순위로 밀리는 답변이 나올까? 그것은 도움을 주려해도 결코 도움을 줄 수 없는 의과학적 한계 상황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현실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으로 하여금 줄기세포를 포함한 '재생의학' 발전에 국가적인 지원을 하도록 추동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로마교황청의 호통소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줄기세포 연구재개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

처음부터 번지수를 잘 못 찾아갔다.

지금도 한국의 주류언론과 지식인들은 줄기세포 논란이 마치 '국익 대 윤리'의 격돌장인 것처럼 설명한다. 여기에 나찌즘과 히틀러가 등장하고, 그것도 모자라 정신대 어머님들의 아픔까지 들먹인다. 이런 식으로 대결구도를 짜놓고는 '한 사람만 너무 죽이는 거 아냐, 기회는 줘야지'라고 말하는 국민들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국익과 윤리 중에 하나만 택하라고. 황우석 살리면 히틀러가 살아나고 박정희가 돌아온다고 말이다.

이것은 본질을 빗겨나간 허위의식이며 100년이든 200년이든 답을 낼 수 없는 무의미한 논쟁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국익 대 윤리'가 공회전 하는 동안 사람이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에서 거론되는 국익이란 '사람 살리지 못하면' 휴지조각에 불과한 국익이다. 난치병 환자의 치유가 중심이라는 것이다. 생명윤리라는 것은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지 생명을 무시하자는 독단이 아니다. 세포의 생명을 거론하면서 난치병 환자의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새해에는 사람을 생각하는 진짜 국익, 진짜 윤리를 만나고 싶다. '진짜'들이라면 진정 과학과 윤리, 국익이 하나되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줄기세포는 남의 일이 아니다. 나의 일, 너의 일,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일이다. 나는 정말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기에 지금 보건복지부에 올라가 있는 황우석 팀 연구재개 서류가 혹시라도 내팽개쳐지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아프니까.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훨씬 더 많으니까. 그러나 우리 인간은 0.00001%의 희망의 힘으로도 다시 우뚝 설 수 있는 강한 존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