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영의 이란 페르시아 문화답사 (마지막회 - 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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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 김제영 / 2010-11-14)
광장의 남단에는 1612-1637년에 걸쳐서 세워진 블루 모스크(Masjede Shah)가 서 있다. 푸르게 빛나는 돔의 눈부심은 황홀하다. 담갈색을 바탕으로 감청색과 흰색의 아라베스크 문양이 춤을 추듯 율동적이고 선율적인 여인 모스크(Sheikh Lotfollah Mosque)는 동쪽에 서 있다. 나지막한 돔은 살이 통통한 씨암탉의 옹골진 몸통을 연상케 하여 절로 뱃살에 주름이 잡힌다. 비현실적 영원성을 반추케 하는 왕의 모스크(이맘은 왕, 즉 Shah의 뜻이기도)와 현실의 실재감이 피부께 와 닿는 질양감이 느껴지는 여인 모스크하고의 상이한 분위기의 대조가 여간 흥미롭지 않다. 샤(왕)의 별궁이라고 할 수 있는 알리 갑푸궁은 서쪽에 높다랗게 세워져 있다.
좁고 가파른 5층의 계단을 다 올라가니 광장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붕이 있는 발코니는 꽤 넓다. 광장에서의 각종 시합, 경기를 샤는 대신들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관람했단다. 울림(Echo)과 방음을 고려한 음향벽이 갖추어진 음악실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커튼의 조작으로 음향조절). 천장은 대형 벌집을 거꾸로 달아놓은 형극이고 벽은 온통 현악기의 향연이다. 장난감 소형 현악기의 문양으로 벽면에 구멍을 냈다. 그 틈으로 들여다 보니 1Ocm의 간격을 두고 한 겹의 벽이 또 있다. 특수공법으로 음향을 조절할 수 있는 이슬람의 건축술은 이슬람 사원의 우미한 돔의 건축양식 못지 않게 경이롭다.
알리 갑푸궁 북단의 타일을 입힌 출입문은 광장 북쪽에 형성된 샤 압바스 시대에 왕립(王立)이었던 상가(Bazaar)에 이르는 통로였단다. 쉬라즈의 Bazaar는 건물이 달랐을 뿐 상품내용은 세계의 관광도시 어느 나라의 상점이나 다를 게 없었다. 이스판의 Bazaar는 일반 기념품이나 상품 카페트를 파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판매를 겸한 세밀화(miniature)제작의 작업장이다. 창조적 예술성보다는 이슬람의 일상생활에서 그들은 모티브를 찾아 단순하게 재현해낸다. 이스판 유파의 화가들이다. 그들의 Miniature 솜씨는 그야말로 장인(匠人)이었다. 광장 서쪽의 Bazaar 구역의 일반상가까지 이맘광장을 ㅁ자 형으로 한 바퀴 돈 셈이다. 보도(步道)가 파란 잔디와 조화롭게 정돈되었고 블루모스크 여인 모스크 알리 갑푸궁 등이 정면으로 문을 열어놓고 있는 장대한 이맘광장 모래바람을 가르며 말을 달리는 유목민 샤 압바스의 기상을 나는 그곳에서 보고 있었다.
이스판에서 저녁을 먹고 6일 밤에 비행기로 테헤란에 돌아왔다. 처음 숙소였던 아자디(Azadi Grand)호텔이 예약된 곳이었으나 한국에서 축구팀이 왔기 때문에 에스데그랄 그랜드(Esteghlal Grand)호텔에 묵게 되었다. 7일째의 일정은 빠듯했다. 시내관광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으란다. 실내가 아니고 아침식탁이 호텔 뜰에 차려져 있다. 입 속이 깔깔해서 주스나 한잔 마시고 이 호텔의 식단이 궁금하기도 하여 뜰로 나갔다. 날씨가 쌀랑하여 춥다. 저녁 같으면 가든파티의 기분도 나겠지만‥
"룸서비스가 프리(Free)인가" 물으니 체크아웃 할 때 계산하면 된단다. 어처구니가 없다. 주스 한 잔을 마시고 그래도 서운해서 부렛 한 쪽을 우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는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호메이니(Khomeini)의 성지를 향해 달린다(테헤란에서 2시간 30분? 거리). 테헤란시 어디이고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이면 호메이니(Khomeini)의 초상이 붙어있다. 호메이니의 얼굴로 시가지가 덮여있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그 정도로 이란 국민정서는 호메이니에 열광하고 있었다. 이란 국민의 열광만큼 두 쌍의 미나레와 오색찬란한 보석의 돔과 기도실, 그 웅려함은 필설로 형언할 수가 없다. 카메라 지참이 허용되지 않아 Mausoleum의 현장을 소개하지 못한다. 입장은 남녀 출입구가 구별되어 있다. 광장처럼 넓은 사원의 기도실에는 호메이니와 현재 살아있는 종교지도자(호메이니의 아들 포함)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다. ‘위대하다’의 뜻인 이맘(Emam)은 호메이니의 이름에만 사용할 수 있고 호메이니는 그 지하에 묻혀있단다. 현재의 종교지도자들이 죽으면 호메이니의 주위에 묻힌단다. 그 위치쯤일까. 대형 새장을 방불케 하는 구조물에 지폐가 가랑잎이 쏟아지듯 쌓여있다. 이맘 호메이니도 지하에서 지폐를 반기고 있는 것일까. 남루한 옷에 영양결핍으로 깡마른 소년이 지폐를 던지고 경건하게 기도를 한다. 기독교도 불교도 이슬람도 금전관계는 비슷한 모양이다. 성직자의 직위는 모자로 식별을 한단다. 종교지도자는 까만색 모자, 지도자가 되기 위해 수련중인 수사의 모자는 흰색이란다. 체육경기장 만큼 넓은 Mausoleum의 기도소에는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예배를 하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눈에 뜨인다. 사원 밖으로 나와 화장실을 찾으니 십리는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공사가 미완성인 것일까 아니면 배설의 기구를 혐오시하여 성전과 될 수 있는 한 거리를 두고자 함에서였을까. 이란 현대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정치와 종교지도자 이맘 호메이니(Emam Khomeini). 그의 열풍은 피안의 등불로 이란 국민의 가슴에서 깜박이고 있을 뿐. 이란의 현대를 헤치고 돌진해야 할 모하메드 하타미 국민의 절대 지지로 그는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그의 개혁정책이 어떻게 개화할지 궁금하다. (계속)
김제영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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