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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박정희에게 했다는 사과문 전문

순수한 남자 2011. 1. 4. 21:40

김일성이 박정희에게 했다는 사과문 전문
번호 225471  글쓴이 Crete (Crete)  조회 2451  누리 355 (375-20, 16:45:4)  등록일 2011-1-4 13:54
대문 20


김일성이 박정희에게 했다는 사과문 전문
(서프라이즈 / Crete / 2011-01-04)


지난 한해 참 다사다난했는데 그 백미는 아무래도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으로 이어지는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고조가 아닐까 합니다.

그건 그렇고…. 이명박 정부 집권이래 온라인상에도 보수적인 네티즌들의 목소리가 제법 자리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특히나 박정희 대통령과 북한을 연결지어서 온라인상에 참 인상적인 얘기들이 많이 흘리고 다니는데, 그중에 백미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는 한마디로 이틀 만에 김일성의 사과를 받아냈다는 얘기가 아닐까 합니다. 꼭 생각 없는 보수 네티즌들만 그런 건 아니고 명색이 공당인 자유선진당의 박선영 대변인이 2009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때 했던 다음의 논평이 이런 류의 얘기 중에 백미로 꼽힐 수 있습니다.

“도끼만행이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해결되고, 왜 김일성이 우리 정부에 사과문을 보낼 수밖에 없었는지 MB 정부는 역사공부부터 해라”며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기사링크)

하긴 당시 서슬 퍼런 유신 치하에서 거의 완벽에 가깝게 언론이 통제되고 있었으니 정부에서 김일성이 사과문을 보냈다면 국민들이야 그런 줄 알았겠지만… 이제 세월도 흐르고 기밀문서로 지정되었던 문서들도 대개 90년대 말에 해제된 것도 많으니 한번 진실의 끝자락을 챙겨보도록 하죠.

자료는 크게 2가지 소스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는 미 육군 전쟁대학 (US Army War College)에서 1977년에 발간된 “북한과 협상법(판문점에서의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미 국무성에서 발간된 “판문점 살인사건 : 위기상황 시 지휘관의 역할”입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시 미국 정부 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sonnet님의 다음 포스팅(링크)을 살펴보시면 될 것 같고 저는 오늘 과연 보수 논객들이나 보수정당 관계자들이 주장하는 박정희에게 공식적으로 보냈다는 김일성의 사과문(기사링크)이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하는 한 가지만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공식적 사과 여부

일단 김일성이 했다는 사과가 공식적인지 여부부터…. 앞서 말씀드린 미 국무성 자료 23쪽에 보시면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JSA 작전 (미루나무를 제거한 폴버년 작전을 의미) 완료 1시간 만에 정전위원회의 북측 대표는 김일성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푸르든 장군에게 사적 회담(private meeting)을 요청했다.”

당시 김일성의 메시지는 인민군 총사령관 명의였으니 전달 방식이 방송을 통해 북한 정부나 군부의 공식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발표했느냐 아니냐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죠. 좀 더 진도를 나가죠.


2. 사과문?

이번엔 미 육군 전쟁대학 자료를 일부 인용해 보죠.

“이 역사적 순간에 유엔군 사령부의 고위장교는 다음과 같은 구두 메시지를 들었다.”

문서로 전달하던 낭독을 하던 내용만 전달되면 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죠.


3. 사과문(?) 전문

그럼 그렇게 사적 회담 자리에서 구두로 전달된 메시지 내용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오랫동안 판문점에서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번에 공동경비구역, 판문점에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유감이다. 장래에 그런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이 경주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양측이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북한)는 귀측(미군)이 도발을 방지하도록 촉구한다. 우리는 절대 선제도발을 하지 않을 것이고 도발이 발생한 경우에만 자위적 조처를 취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 김일성의 메시지를 읽고 든 첫 번째 느낌은 80-90년대에 지겹도록 들어온 일본의 식민지 유감 발언, 그러니까 ‘통석의 염’을 들었을 때 떠오른 감정 같은 거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느낌은 당시 미군 수뇌부들 비위도 참 좋다는 생각이었고. 더불어 미군 장교를 두 명이나 도끼로 때려죽여 놓고는 미군에게 도발을 방지하도록 촉구하는 북한의 적반하장에 놀랐고.

아무튼 이런 김일성의 사과문(?) 낭독을 들은 미군 측의 반응은, 특히나 스틸웰(Stillwell) 장군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totally unacceptable)는 반응이었는데 반해 국무부 쪽에서는 나름 의미 있다(conciliatory)고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휴전 이후 인민군 총사령관 명의일지라도 김일성이 특정 사안에 직접 유감(regret)을 표명한 첫 사례이니까요. 하지만 책임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은 채 유감을 표현했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미군보고 도발 방지를 촉구하는 등 사실 내용 자체만으로 보자면 미진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결국 김일성의 사과문(?)이 접수된 시점이 8/21인데 나흘 후인 8/25 미국은 다음의 3개 항의 요구 사항을 북한에 전달합니다.

1) 유엔사령부는 김일성의 “유감” 표현과 향후 공동경비구역에서의 사건 발생을 방지하자는 공동노력에 대한 언급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2) 유엔사령부의 두 장교를 잔인하게 살해한 책임이 있는 북한군 인물은 처벌받아야만 한다.

3) 공동경비구역 내에서의 유엔사령부 인원의 안전보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이즈음에서 박정희와 남한 언론은 미군의 뜨뜻미지근한 대응에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지만… 물주(?)가 지갑을 열지 않는데 별수가 있을 리 없죠.


4. 결론

아무튼 판문점 도끼만행과 관련된 미국 쪽 원자료를 들춰보며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 중 정확하지 않은 점이 꽤나 많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네요. 어찌 되었건 자유선진당 대변인 말씀마따나 역사공부를 하라고 하셔서 역사공부를 해 봤습니다만… 김일성이 보낸 걸 사과문으로 볼지 말지는… 저는 그렇게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80-90년대 일본정부의 식민지 사과발언의 느낌 그대로랄까요.


사족

이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얼마나 미국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되었는지 하는 점은 따로 시간이 나면 포스팅을 추가로 하도록 하죠. 더불어 아들내미가 저질러 놓은 일 뒤치다꺼리하느라 북한 쪽 입장에서 봤을 때 개망신 당한 김일성의 입장에 대해서도 시간이 나면 또 글 하나를 준비해 보죠.

그리고 제가 아래 링크를 걸어 놓은 두 종류의 원자료는 시간이 나실 때 찬찬히 읽어 보셔도 좋을 내용입니다. 저야 김일성의 사과문(?) 내용이 궁금했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 글을 작성했지만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은 당시 한반도 정세의 이해를 넘어 현재 이명박 정부의 행동과 북한을 반응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고 따라서 당시 북한과 미국의 속사정을 적나라하게 기록해 놓은 이 두 자료는 충분히 시간을 투자해서 읽어볼 만합니다.

더불어 저의 경우 판문점 도끼만행과 관련한 김일성의 사과문(?)을 낮게 평가하기는 했지만 sonnet님의 다음 포스팅을 읽어보시면 그게 북한식으로는 충분한 사과라는 의견도 있기는 합니다. (http://sonnet.egloos.com/3823252)

원자료 링크

1. 미 육군 전쟁대학(US Army War College)에서 1977년에 발간된 “북한과 협상법(판문점에서의 경험)”

2. 미 국무성에서 발간된 “판문점 살인사건 : 위기상황 시 지휘관의 역할”

 

Crete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25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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