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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침몰 작전

순수한 남자 2011. 1. 6. 21:24

스웨덴 침몰 작전
번호 225943  글쓴이 개곰 (raccoon)  조회 4498  누리 1059 (1059-0, 48:144:0)  등록일 2011-1-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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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침몰 작전
(서프라이즈 / 개곰 / 2011-01-06)


1981년 10월 스웨덴의 카를스크로나 해군 기지 인근 해역에서 소련의 위스키급 잠수함이 좌초한 사건이 벌어지자 스웨덴은 발칵 뒤집혔다. 스웨덴 해역을 포함한 발트해에서 영미 주도의 나토군 잠수함과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 동맹군 잠수함이 수시로 군사 작전과 정탐 활동을 벌인다는 것은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소련 잠수함의 영해 침공은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의 국민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소련은 사과했고 문제의 잠수함은 무사히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는 스웨덴 해역에 출몰하는 의문의 외국 잠수함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 잠수함들은 일부러 사람 눈에 띄기를 바라는 것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바닷가에 바짝 접근하여 잠망경을 오랫동안 물 밖으로 드러내기 일쑤였다. 스웨덴 해안을 지키는 관측기지들도 심해에서 정체불명의 잠수함들이 공공연하게 스웨덴 영해에서 잠행한다는 보고를 올렸다. 언론에서는 정체불명의 잠수함은 틀림없이 소련 국적이라고 단정 지었다. 서방 언론도 대대적으로 이 문제를 보도했다.

결국 1982년 가을에는 대대적인 잠수함 사냥이 시작되었다. 전 세계에서 750명이 넘는 외신기자가 잠수함 수색 작전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일선 지휘관들은 대잠 수중 폭뢰를 투하했고 실제로 폭탄을 맞은 잠수함에서 긴급 수리를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음향이 관측되기도 했다. 그러나 폭뢰 투하량을 최대한 줄이라는 지시가 군 지휘부로부터 내려왔다. 스웨덴 군 수뇌부는 적 잠수함이 빠져나갈 시간을 주려는 듯 ‘휴전’ 지시까지 내렸다. 결국 잠수함 사냥 작전은 단 한 대의 잠수함도 확실히 적발하지 못하고 끝났다. 그러나 문제의 잠수함이 소련 잠수함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스웨덴 국민은 거의 없었다.

1980년대 내내 이런 잠수함 영해 침범은 끊이지 않았다. 해마다 확실한 영해 침범이 6건에서 10건은 일어났고 영해 침범으로 추정되는 경우는 해마다 수십 건씩 일어났다. 소련 국적으로 추정되는 외국 잠수함의 자국 영해 침범이 거듭될수록 소련에 대한 스웨덴 국민의 인식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냉전의 막바지인 1980년대에 소련이 우월한 군사력을 앞세워서 중립국인 스웨덴이 서방에 밀착되는 것을 경고하는 차원에서 공공연하게 잠수함 침공 작전을 벌였다는 것은 스웨덴은 물론 스웨덴 바깥에서도 정설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스웨덴의 군사안보 전문가 올라 투난더는 사실은 이 모두가 미국이 벌인 작전이라는 것을 치밀한 기록 분석과 관계자 증언을 통해 밝혀냈다.

1982년 총선에서 집권한 사민당의 올로프 팔메 총리는 미국에는 눈엣가시였다. 이미 1969년부터 1976년까지 총리를 역임했던 팔메는 베트남전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니카라과의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는 산디니스타 해방군을 지지했다. 팔메는 1982년 다시 정권을 잡은 뒤로는 북유럽과 동유럽을 항구적으로 비핵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독일을 비롯하여 유럽 전체가 스웨덴처럼 중립국으로 돌아서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악몽이었다. 잠수함 출몰 작전과 사냥 작전은 모두 미국이 올로프 팔메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짜낸 묘수였다. 1982년 가을에 시작된 잠수함 사냥 작전은 올로프 팔메가 총리로 당선되고 나서 2주일 만에 개시되었다.

잠수함 사냥 작전과 함께 스웨덴 내의 반소 여론은 들끓었고 중립국 스웨덴의 비핵화 정책과 독자적 대외 정책은 타격을 받았다. ‘적국’인 소련의 위협 앞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자국 안보도 지키지 못하는 무능한 지도자의 평화 정책은 스웨덴 안팎에서 비웃음만 샀고 집권 사민당은 수세에 몰렸다. 팔메는 중립국 스웨덴의 주도 아래 유럽이 소련과 담판을 짓고 비핵화를 위한 돌파구를 열 수 있다고 믿었지만 잠수함 작전 때문에 이제 소련은 스웨덴의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1976년까지만 해도 소련을 직접적 위협으로 여기는 스웨덴인은 6%에 그쳤고 소련이 스웨덴에 우호적이지 않다고 보는 스웨덴인도 27%에 불과했다. 1980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도 이 수치는 각각 8%와 33%로 약간 올라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1981년 카를스크로나에서 소련의 잠수함이 좌초한 뒤로는 34%의 스웨덴 국민이 소련을 직접적 위협으로 여겼고 71%가 소련이 스웨덴에 우호적이지 않다고 응답했다. 1982년 잠수함 사냥이 있고 나서는 이 수치가 각각 42%와 83%로 뛰었다. 소련이 스웨덴에 우호적이라고 생각하는 스웨덴인은 1970년대의 10-15%에서 1983년에는 1-2%로 급감했다. 70년대에는 스웨덴 국민의 15-20%만이 국방비 증액을 지지했지만 잠수함 사태 이후로는 50%로 늘어났다.

애국심에 불타는 스웨덴 장교들은 자국 해역을 뻔질나게 침범하는 소련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사민당 정부를 격렬하게 성토했다. 대부분의 군 장성들도 잠수함이 정말로 소련 국적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극소수의 스웨덴 군 수뇌부는 미군과의 조율 아래 사태를 적절히 통제하고 있었다. 미군은 잠수함 작전을 벌이면서 실제로 소련 잠수함과 비슷하게 만든 잠수함, 소련 무기, 소련 통신 장비를 이용하고 군인들에게 소련 해군복까지 입혔을 가능성이 높다고 올라 투난더는 지적한다.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스웨덴 해역에서 잠수함 사냥이 벌어지는 동안 폭뢰를 맞고 바다 밑에서 수장된 미군의 숫자도 적지 않을 것으로 투난더는 본다. 1982년 한 해 동안 목숨을 잃은 미국 해군 병사의 숫자는 562명이었고 1980년대에는 모두 5865명의 미국 해군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몇 명이 이런 비밀 군사 작전을 벌이다가 우군의 공격을 받고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국이 스웨덴에서 벌인 잠수함 작전은 동맹국 또는 잠재적 동맹국의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서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수시로 벌여온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스웨덴이 국제 평화를 증진하는 공정한 대외 정책을 추진하는 발판은 중립국이라는 지위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런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안전한 중립국이라는 현실적 지위를 소련의 침공이라는 ‘가짜 현실’로 무너뜨려서 스웨덴이 더 이상 독자적으로 대외 정책을 추진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여론은 조잡한 선동으로는 움직이기 어렵지만 이런 고도의 간접 심리전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이념에 휩쓸리지 않는 유연한 행보로 지지 세력을 넓혔던 이탈리아 공산당도, 일찌감치 사회주의를 ‘생산 수단의 공적 소유’가 아니라 ‘정치와 경제의 민주주의 발전’으로 규정짓고 정당 간의 폭넓은 연대를 통해 스웨덴을 가정처럼 포근한 나라로 만들었던 스웨덴 사민당도, 이런 고도의 심리전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소련을 성토하는 여론으로 어려움을 겪던 올로프 팔메 총리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비핵화 회담을 한 달 앞두고 암살당했다. 팔메가 죽고 나서 스웨덴은 영원히 달라졌다. 스웨덴은 이제 무늬만 중립국이다. 아프간에도 전투병을 파병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공생을 도모하던 남과 북은, 일본의 독도 침탈 시도를 한목소리로 규탄했던 남과 북은, 이 정권 들어 상호 전쟁이라는 공멸의 길로 차츰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군사 교류의 단계를 넘어 군사 협력까지 맺으려고 한다. 북을 주적으로 하는 한일 군사동맹이 체결될 날도 멀지 않았다. 한반도의 통일을 가장 두려워하는 세력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과 일본이다. 한국이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가지는 장점은 침공이라는 역사적 부채가 없어 국가 간의 관계에서 불신을 사지 않는다는 점인데 ‘빛나는’ 제국주의 침공의 역사를 가진 일본과 결탁하면 자연히 일본의 역사적 부채도 나누어지게 된다.

이념이 다르지만 공생을 도모하려던 스웨덴과 소련을 이간질하려고 스웨덴 바다에서 ‘소련 잠수함의 도발’이라는 가짜 현실을 꾸며냈던 미국은 한국 바다에서도 ‘북한 잠수함의 도발’이라는 가짜 현실을 지어내서 여론을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남과 북을 이간질하는 쪽으로 만들어간다.

미국의 정치학자 해롤드 라셀은 1941년에 쓴 <병영 국가 garrison state>라는 글에서 가장 무서운 형태의 군사 권력은 군부 독재가 아니라 자국민에게는 향락을 만끽할 지엽말단적 자유만을 주어 자기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는 환상을 심어주면서 군인, 기업인, 정치가가 한통속이 되어 외부의 위협을 끊임없이 강조하여 항구적으로 군사비를 증액하고 대외 전쟁을 벌이는 병영 국가로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70년 전의 경고는 이미 현실이다. 미국은 병영 국가가 된 지 오래다.

미국이 좋아하는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병영 국가다. 미국이 여성과 아동을 포함하여 개인의 인권을 어느 나라보다도 앞장서서 보장하면서 그런 평화로운 관계를 국제 관계에서도 관철시키려던 스웨덴 같은 나라를 가라앉히려고 공작을 벌인 것은 스웨덴 같은 민주주의 국가가 확산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력으로 자기 안보를 지키려는 이란이나 북한 같은 나라는 병영 국가라고 몰아세운다. 악의 축이라고 비난한다.

스웨덴의 중립은 진짜 중립이 아니었다. 소련과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고 해서 중립국의 조건이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중립은 상대방의 선의에 기대는 중립이다. 냉전이 끝나자 스웨덴은 미국의 자장권으로 금세 빨려들었다. 스웨덴의 국방력이 막강했다면 소련의 가짜 위협에 불안을 느끼고 미국에 붙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 나라를 제 손으로 지킬 힘이 있는 나라만이 진정한 중립, 지속 가능한 중립을 실천에 옮길 수 있다.

나라의 힘은 중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방력에서 나온다. 말의 힘을 믿지 않고 주먹의 힘만을 믿는 병영 국가가 군림하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주먹의 힘을 키우지 않고 말의 힘을 믿은 올로프 팔메가 암살당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주먹의 힘이 없는 이상 스웨덴 국민은 두 번 다시 올로프 팔메 같은 사람을 감히 지도자로 뽑지 못할 것이다. 주먹의 힘이 없을 때는 중립이고 나발이고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사실을 스웨덴 국민은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개곰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2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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